소련으로 망명한 포석 조명희와 그의 조카 벽암

by 양문규


식민지 당국에 대항한 소작인 계급의 투쟁을 그린 포석 조명희의 「낙동강」(1927)은, 우리 문학사에서 본격적 프롤레타리아 소설의 시작을 알린다. 청년 ‘박성운’은 농민들의 생존이 걸린 낙동강의 갈밭이 총독부의 국유지로 편입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된다.


심한 고문 끝에 몸이 상하고 병이 깊어지자 보석으로 석방된다. 박성운에게는 애인인 백정의 딸, ‘로사’가 있다. 실제 낙동강 인근 진주‧김해는 백정들의 ’ 형평사‘ 운동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로사‘라는 이름은, 독일 공산당을 창당한 여성 혁명가 ’ 로자 룩셈부르크‘를 연상시킨다.


로자는 유대인 출신이기에, 자신이 세운 당이 ‘반(反) 유대주의’의 표적이 돼, 극우 테러로 암살된다. 성운은 애인 로사의 성이 ‘노’씨이니 아예 이름을 ‘로사’로 바꾸자고 한다. 작품은 성운이 죽고, 성운의 뜻을 이어, 로사가 유랑민들 틈에 껴 북간도로 망명을 떠나면서 끝난다.


로사가 망명하듯이 작가도 「낙동강」을 발표한 이듬해인 1928년 지금의 러시아, 소련 땅으로 망명한다. 조명희가 소련으로 망명의 길을 떠난 것은, ‘소비에트 연방’을 무릉도원으로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 컸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조명희의 조카이자 역시 작가로 활동한 조중흡(벽암)이 있다. 벽암은 중학교 시절, 처자를 부양하고 문필생활을 하며 궁핍하게 살아가는 삼촌에게, 자기도 작가가 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한다. 이에 조명희는 “조선에서 문학을 하다 밥 굶어도 좋으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벽암이 경성제대에 입학하던 그 해 포석은 망명한다. 벽암이 쓴 단편소설 「구인몽」(1932)은 망명 직전 조명희의 처지를 상상해서 썼을 것이다. 제목 ‘구인몽’은 ‘지렁이의 꿈’이라는 뜻이다. 주인공 ‘나’는 농민조합 일로 감옥을 살다가 가출옥한 상태로 자유롭지 못한 몸이다.


직장도 구할 수 없고 매매일을 굶어야 하는 상황을 보다 못한 아내는 이웃집 밭의 토란을 훔치러 갔다가 낫에 잘린 지렁이에 놀라 토란도 못 캐고 기겁하여 돌아온다. 지렁이라는 말에 힌트를 얻은 ‘나’는 이를 미끼 삼아 근처 웅덩이로 낚시를 가 호구지책을 삼을까 한다.


그나마 기력이 없어 한 마리도 못 잡고 귀가하던 중 길바닥에 널린 개구리를 잡아 양식거리로 가져온다. 개구리를 보고 질겁하는 아내에게, 이 세상은 뱀이니 독사니 하는 것을 욕해도 세상이 하는 짓들이란 것이 모두 구렁이, 독사 같이 칭칭 감아 빨아먹는 짓이라 한다.


그러니 우리도 개구리라도 억지로 먹어 징글징글한 독사의 흉내라도 내야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되묻는다. 결국 ‘나’는 매일 밤 자신의 거취를 탐문하러 오는 일제 관헌의 눈길이 뜸해진 틈을 타, 야반도주를 결행한다. 지렁이 모양 컴컴한 지하로 잠적하는 것이다.


아내를 고국에 두고 가면서, ‘나’는 아내가 행여 유복자나 다름없는 애를 가졌으면 어쩔까 하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아내는 “어이, 가시오. 어서 달아나 주세요. 저는 어떻게라도 살아갈” 것이라며 ‘나’의 등을 떠민다.


포석은 망명했지만, 벽암은 대학을 졸업하고 화신백화점 회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창작 생활을 병행해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의 소설 「유전보」 (1938)에는 가족을 버리고 망명을 떠난 삼촌과 달리, 현실에 안주해서 살아가는 그의 자책감 등이 그려진다.


「유전보」 에는 벽암과 비슷한 신분의 회사원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 회사에 급사로 일하던 ‘숙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중국으로 망명을 떠나 고아 신세가 된 처녀다. 친척에 얹혀서 살던 숙자는 사기에 걸려 뱃사람들을 상대하는 항구의 색주가로 팔려 간다.


주인공은 숙자를 색주가에서 빼내려고 회삿돈을 횡령했다가 지방으로 좌천되면서 이도 저도 못하고 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실제로 조명희의 어린 딸은 버스 걸이 되고,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생활고와 일제의 박해로 뿔뿔이 흩어져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조명희는 소련에 가서도 조선어로 작품을 쓰면서 우리 디아스포라 문학의 효시가 된다. 그러나 그는 일본과 이차대전을 치르게 된 소련 스탈린 체제하에서 일제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총살형을 당한다. 내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괴로웠으리라. 포석의 길이냐? 벽암의 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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