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나탸샤’라는 이름은 흔한 여성의 이름인가 보다. 문학작품에서 유명한 나타샤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1863~67)의 나타샤가 있다. 영화로 각색된 ‘전쟁과 평화’에서 나타샤를 연기하는 오드리 헵번과, OST인 ‘나타샤 왈츠’가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 있지 않은가.
나타샤의 아름다운 모습은 『전쟁과 평화』 여러 군데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트라드노예’의 늦가을 사냥 장면에서다. 나타샤는 오빠의 만류에도 시골 영지서 벌어지는 사냥에 나선다. 소설 속에서 사냥개들이 동물들을 쫓는 장면은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사냥대에 잡힌 늑대는 사람들이 건드리면 자신의 묶인 다리를 부르르 떨며 사납게, 그러면서도 순박하게 모두를 바라본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사냥개 ‘라스카’가 도요새를 사냥하는 장면을 ‘라스카’와 하나가 돼 그린다.
사냥 후 말을 타고 들판에서 돌아오는 대담한 귀족 아가씨 나타샤를 바라보는 농노들의 호기심은 놀라움으로 바뀐다. 나타샤는 시골서 야인으로 살아가는 아저씨 집에서 소박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마부와 아저씨가 하프가 아닌 발랄라이카와 기타로 연주하는 노래를 듣는다.
그 노래는 선율보다는 리듬으로 노래하는 민중의 노래다. 노래가 흥에 오르자 나타샤는 숄을 벗어던지고 그들 앞에 두 손을 허리에 얹고는 어깨로 동작을 취하며 선다. 나타샤의 정신과 몸짓은 모방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러시아적인 것이다.
그 장면에서 나타샤는 프랑스 여인들에게 교육받은 백작 영애도 아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무도회에서 춤추는 귀족 부인도 아니다. 도시의 허위와 부자연스러운 귀족 문화와 대결하는 러시아 민중과 전원의 생명력과 자연스러움을 한껏 드러낸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1938)에도 나타샤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백석은 한때 함흥 영생고보에서 교편을 잡았었다. 러시아와 인접해 있던 함경도에는 백계 러시아인들이 더러 와 살았고, 그들의 작은 집단 거주지도 있었다. 소설가 이효석은 그곳을 가보기도 한다.
백석은 그곳에서 나타샤 같은 러시아 여인을 봤을지도 모른다. 아니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를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쟁과 평화』에 나타샤가 시골 영지에서 사냥을 마치고 마차를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장면이 있다.
나타샤가 지나는 마을에 붉은 등불이 켜지고 기분 좋은 연기 냄새가 풍겨온다. 밤은 어둡고 축축하다. 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창에서 말들이 절벅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백석 시의 당나귀 소리가 들려올 듯한 밤이다.
백석 시에서 화자는 나타샤와 함께 흰 당나귀를 타고 깊은 산골로 간다, 눈은 ‘푹푹’ 나리고 흰 당나귀는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운다. 나타샤와 함께 산골로 가는 건, 세상한테 져서가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1812년 전쟁의 승리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아니고, 그렇다고 러시아의 알렉산더 황제나, 위대한 쿠투조프 장군도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승리자는 이름 없는 ‘민중’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역사는 민중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역사의 법칙’이다.
나타샤는, 1812년 전쟁을 치르면서 ‘서구주의자’에서 ‘민중주의자’로 변신하는 피에르와 결합한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병들고 쇠락한 귀족사회와 대조가 되는 러시아적 열정의 소녀 나타샤의 싱그러운 민중적 생명력을 사랑한다.
시인 백석이 어둡고 비인간적인 식민지 현실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톨스토이가 소설 속 그 어느 인물보다도 나타샤를 사랑했고 그 여인을 통해 러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상상했듯이, 백석 역시 산골로 함께 가는 나타샤가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