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천 소설과 미국 선교사

by 양문규

평안도는 한때 선교사 사회에서 ‘조선의 예루살렘’ 또는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다. 초창기 기독교 선교가 그곳에서 대단히 성공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창시자인 김일성의 집안도 평안도인데, 그의 외조부는 장로였고 외가 집안에선 목사도 몇 명 배출됐다.


김일성보다 한 살 위인 작가 김남천은 평양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평안도 성천이 고향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무대로 장편 『대하』(1939)를 쓰는데, 소설의 주인공 ‘박형걸’은 첩의 자식 곧 서출로, 여러 차별을 겪지만 교회의 영향을 받고 개화 청년으로 성장해 나가는 인물이다.


『대하』에서는 개화기 당시 평안도에 들어온 기독교의 여러 풍경들이 그려진다. 예수의 부활 승천 성화를 보고는 “하늘로 올라가는 이 자가 목수의 아들 텁석부리 그이냐?”라고 묻기도 하고, 마리아 성화를 보곤 “예수 오마니인데, 참 곱게 생겼다고” 하기도 한다.


당시 교회당 모습도 그려진다. 교회당은 원래 가운데 부엌을 두고 기역 자로 꺾여 양쪽 두 칸식 방이 달린 집이었다. 그런데 부엌을 메워 강도상을 만들고, 기역 자 한쪽은 남자, 다른 한쪽은 부인네들 예배석으로 꾸민다. 대문을 고쳐서는 지붕을 돋워 나무 열십자를 세운다.


옆으론 사다리처럼 층계를 만들어 갈대로 위를 덮고 밑에 종을 매단다. 김남천은 해방 후에도 『대하』의 속편으로 『동맥』(1946)을 쓰는데, 거기서는 잠깐 서양인 목사도 등장한다. 그 목사는 성천 마을에서 열리는 교회당 낙성식에 참석하러 평양에서부터 나귀를 타고 온다.


김남천은 『대하』에서는 기독교를 문명개화의 방편으로 그리지만, 『동맥』에서는 기독교가 결국은 우리 것이 아닌 외래의 것임을 지적한다. 서양인 목사도 “얼굴이 빨갛고 귀하고 콧등만 유난스레 커다랗게 보인”다며 다소 흉보듯이 그린다.


그리고 교인들이 시골 교회당을 짓는 데 거액의 금전을 ‘연보’하는 것을 보고, 동학 교인들이 병을 고치고자 천도교 부적인 영부(靈符)를 사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비판한다. 김남천은 ‘근대화(문명개화)=미국화=기독교화’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고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조선에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우리가 문명개화의 길로 들어서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단지 당시 그 먼 조선까지 구미 국가들 중 유독 미국의 선교사들이 주도적으로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이 궁금하기는 하다.


미국은 역사의 주요 국면마다 늘 기독교의 대각성(신앙부흥) 운동이 있었다. 특히 남북전쟁을 겪으면서 엄청난 고통을 치른 미국은, 19세기말 벌어진 대각성운동을 통해 미국 중심 민족주의와 결합한 사회적 복음의 불꽃을 당기고 전 세계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도록 한다


신대륙 미국은 서부 개척의 역사가 웅변하듯이 사회가 늘 유동적이었고 이주 개척자들을 위한 부흥회에서 순회 선교사들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대개 교회가 아닌 광장이나 공터와 같은 야외장소에서 설교를 하며 거기서 대량의 개종자를 만들어 간다.


순회 선교사들은 ‘성령의 은사’로 가득 차 있고 특히 말들을 잘해 그들의 설교에 청중들은 회심을 하고 심지어 실신하기까지 한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1885)에는 가출한 소년 ‘헉’이 아칸소 지방을 지나다 엉터리 순회 선교사와 마주치는 장면이 나온다.


헉은, 순회 선교사와 떠돌이 약장사가 주고받는 얘기를 엿듣게 된다. 선교사가 말하길, “나는 이 마을에서 한 주일 남짓하게 부흥회를 연다네. 여편네들한테서 인기를 한 몸에 받는데, 다름 아니라 술꾼들을 호되게 혼내 주기 때문이지.”


“수입으로 말하면 선교 일이 짭짤하지. 하나님 복음을 전할 야만인들이 아주 먼 곳에 살고 있다고 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 야만인들을 위해 더 많은 현금을 즉석에서 내놓는단 말씀이야. … 한참 시절엔 의사 노릇도 꽤 잘했는데 손을 머리에 얹어 안수하는 것이 내 장기지.”


헉이 목격한 부흥회 장면도 나온다. 순회 선교사가 찬송가를 한 줄 한 줄 읽으면 청중이 그 뒤를 따라 노래를 부른다. “십자가 군병 되어 예수를 좇을 때” 사람들은 흥분하면서 노랫소리가 점차 높아진다. 끝날 때쯤이면 어떤 이들은 신음을 내고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선교사가, “지금 성령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황 지옥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소.”라고 외치면, 사람들이 통곡하고 비명 지르고 울부짖으며 일어나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회개자’들이 앉은 의자로 몰려 나간다. 19세기 중엽 미국에서의 일인데 우리 눈에 아주 익숙한 풍경 아닌가!



선교사의 이동 그리피스 컬렉션.jpg 선교사의 이동, 그리피스 컬렉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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