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설 속 여성의 '순결'

by 양문규

개화기 신소설에는 조선 시대의 고소설과 달리 여자 주인공들의 등장이 활발해진다. 신소설의 주제가 통상 그러하듯이, 여주인공도 남자와 같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신식 교육을 받고 문명개화에 눈을 뜨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신소설은, 여주인공들을 문명개화에 초점을 맞춰 그리기보다는, 그들이 가정 밖으로 나가는 상황이 됐을 때 겪게 되는 수난을 그리는데 더 초점을 맞춘다. 가령 신소설은 여주인공이 자의든 타의든 집에서 쫓겨나는 데서 시작된다.


집을 떠남으로써 빚어지게 되는 여인의 수난은 배고픔 또는 공부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다. 정절을 잃게 되는 위험 때문이다. 그러나 여주인공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순결을 잃지 않는다. 순결을 잃으면 이미 주인공으로서 ’ 자격 상실‘이다.


신소설 작가들이 여성의 순결 내지 정조를 중요시 여기는 것은, 여성들도 새로운 시대를 맞아 신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나, 여성들은 이런 교육을 받고 궁극적으로는 가정으로 복귀해 소위 ‘현모양처’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들은 여성에게 ‘교육의 평등’이라는 기회를 줄지언정, ‘사회적 평등’은 용납하지 않는 셈이다. 이 시대 작가들은 여성들, 특히 ‘신여성’들의 순결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강박의 신경증적 반응을 보인다.


신소설에 이어 유행하는 ‘신파 소설’은, 일본서 유행한 대중소설의 플롯을 기본으로 하고, 인물과 장소 등은 우리 것으로 바꿔놓은 소위 번안 양식의 소설이다. 그 대표적 작품이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야기로 잘 알려진 조일재의 『장한몽』(1913)이다.


『장한몽』의 원작인 일본소설 『금색야차』(1897)는, 여주인공 ‘미야’가 옛사랑 ‘강이치’를 배신하고 부잣집 남자와 결혼을 하나 곧 후회를 하고 괴로움에 빠지는 이야기다. 결국 미야는 불치의 병에 걸려 애처로운 죽음을 맞고 이것이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잘 알다시피 『장한몽』의 심순애는 ‘여학생’ 신분으로, 부모가 어린 시절 정해준 이수일과 혼인을 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심순애는 부호 김중배의 ‘금강석(다이아몬드)’에 유혹돼 이수일을 배신하고 김중배에게 시집을 간다.


시집을 간 심순애가 김중배와의 결혼을 후회하는 건 원작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심순애는, 시집간 지 자그마치 오륙 년이 흘러도 이수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김중배에게 단 한 번도 몸을 허락하지를 않는다. 김중배의 거듭되는 요구에도 심순애는 이를 완강히 거절한다.


심순애는 중간에 자살 기도도 하지만 끝내 순결을 지키고 이수일과 재결합을 한다. 만일 심순애가 정절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결말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이런 줄거리를 얘기해 주면 소설을 발로 썼냐고 묻는다.


간혹 신파 소설의 여주인공인 ‘신여성’들이 순결을 잃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그 이유가 어찌 됐든 여주인공은 평생을 죄의식에 시달리며 백 퍼센트 불행한 말로를 맞는다. 근대소설의 효시라 하는 이광수의 『무정』(1917)도 여성의 순결에 대한 강박증적 집착을 보여준다.


『무정』의 이형식은 어린 시절 결혼을 약속한 은사의 딸 박영채와 오랜 세월을 헤어졌다가 재회한다. 영채는 어려운 세월 속에 기생 신분이 돼 형식 앞에 나타난다. 형식은 영채가 기생도 기생이지만, 아직도 순결을 지키고 있는지 하는 점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기생’ 영채는 결국 술자리서 성폭력으로 순결을 잃는다. 형식은 이 국면에서 결정적으로 영채를 포기하고 ‘신여성’ 선형을 선택한다. 이 시기 작가들 대부분은, 여성의 순결 자체가 중요했다기보다는, 이를 신여성을 가정 또는 가부장제에 묶어놓는 감금 장치로 생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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