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한 여학생이 밤하늘의 별을 가리키며 저 별자리 이름이 뭔지 아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난 그런 거 잘 모른다고 하니, 어떻게 문학을 하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모르냐고 질타를 하기에, 문학이랑 별자리가 무슨 관계냐며 속으로 별꼴이 반쪽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별자리가 아니더라도, 사물이나 자연에 대한 관심과 관찰력이 그리도 없으니 문학을 가르치는 것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결국 ‘문학’을 하지는 못 했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얼마 전 정월 대보름에 있었던 월식 역시 관심도 없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이효석의 「개살구」(1937)에 월식이 등장한다. 강원도 평창 사람 김형태는 오대산에 산줄기나 갖고 있던 덕분에 벼락부자가 된다. 산에 채벌장이 들어서고 박달나무 시세가 올라, 벤 나무를 주문진 항구에 부려 놓으면 철로 공사가 있는 이웃 항구로 날라 ‘돈벼락’을 맞는다.
형태는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논도 사고, 춘천 가서 중학을 다닌 아들 재수를 조합 서기로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첩 놀음에 뛰어드는데 먼저 가까운 강릉에서 첩을 데리고 오지만 그녀는 강릉서 이미 사귀던 남자가 있어 한 해를 못 넘기고 도망친다.
이번엔 멀리 서울까지 가서 얼굴이 ‘히어멀숙’ 하고 자그마하며 야무진 미인 색시를 구해 온다. 형태는 그녀를 위해 함석지붕도 새로 이고 라디오, 유성기도 들여놓는 등 여자의 비위를 맞추는 한편, 단속을 철저히 해 집 근처에 외간 남자들이 조금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서울집은 형태의 아들 재수와 눈이 맞는다. 마을에 소문이 돌고, 급기야 형태는 이들의 밀회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분에 못 이긴 그는 아들을 물푸레 나뭇가지로 몰매를 쳐 실신케 하고, 서울집은 사지를 결박하고 입에 재갈을 물려 인두로 얼굴을 지진다.
아들은 서울로 도망가고, 형태는 재산을 늘릴 욕심으로 면장 운동에 몰두하며 분을 삭이나, 끝내는 서울집을 잃을 것 같은 안타까움에 사로잡힌다. 서울집 꼴이 보기 싫어 들여다보지도 않지만, 일변 보약을 달여 먹이기도 하면서 간간이 식은 정이 불꽃같이 일어 괴로워한다.
「개살구」는 “어금니에 군물을 돌게 하는” 개살구가 익어가는 산골 마을을 무대로 한다. 살구나무집에 갇혀 살다시피 하는 서울집은, 답답함을 못 이겨 밤에 몰래 시냇가에 목물을 나오기도 하는데, 형태의 아들과 밀회를 갖는 밤은 바로 월식이 있던 밤이다.
부엉이 울음이 잦아지며 “하늘의 개가 붉은 달을 입에 넣고 게웠다 물었다 하다가 드디어 온전히 삼켜 버리는” 날 밤, 살구나무 밑에서 서울집과 재수의 불륜의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월식이 일어나는 산골의 밤은 조금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문학 작품 속에서 월식은 대개 불륜 또는 에로틱한 욕망을 환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 시인은 하늘 속 달이 사라지는 것을 “팬티 벗고 커튼 내리고”, “꼭 그 짓하러 침실로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런 날 밤은 깜깜한 저 방에 그 여인과 한 몸이 돼, 한번 깜깜하게 지워지고 돌아와서 감히 형벌과도 같은 벼락을 받겠다고 한다.(이성선, 「월식」) 월식은 욕망을 환기하는데 그 욕망은 어두운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은 덧없기 마련이고, 박경리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덫에 걸린 짐승“과도 같은 것이다. 이미 그 안에 집착과 파멸을 안고 있다. 더욱이 어두운 욕망일수록 그것은 아주 짧고, 끝은 파국이지만, 대신 그 순간은 아주 격렬하다.
「개살구」 무대인 오대산에는 월정사(月精寺)가 있다. “흡월정(吸月精)”은, 음력으로 초열흘부터 보름까지 닷새 동안 달이 만삭처럼 둥그렇게 부풀어 오를 때, 갓 떠오르는 달을 맞바라보고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셔, 달의 기운을 몸속으로 빨아들이는 기원 행위다.
애를 낳기를 희구하는 여인들의 기원 행위다. 달이 차오르든, 하늘 속으로 사라지든 달에 관련돼 인간이 갖는 상상력들이 흥미롭다. 앞서 얘기했지만 나는 그런 상상력은 없는 사람이고 문학 속에 나온 상상들을 갖고 얘기해 보는 그런 정도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