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가득 찬 농담반 진담반
영화 취향이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좋다. 한 사람의 영화 보는 안목과 취향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고 (물론 내 입에서 나온 개소리), 처음 만난 사이거나 아직 어색한 만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영화 취향을 물어보곤 한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가장 괜찮았던 작품은 뭐였어? 인생영화가 뭡니까? 이런 질문을 가볍게 던지곤 하는데,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 그니까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사람들에게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들의 대답에 따라 그 사람의 영화 취향과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인생을 속단해 버린다. 즉, 나에게 해리포터 시리즈는 한 사람을 성급히 판단하는 데 아주 좋은 기준이 된다.
만 8세의 나이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무렵, 극장가에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전 세계 초딩들과 청춘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실사 영화로 만나는 마법사들이라니. 그 시절 영화 속 마법사는 60년대 나왔던 우산 마법사 메리 포핀스 혹은 디즈니에 나오는 2D 말리피센트 뿐이었다. 90년대 태어난 많은 초딩들은 이때부터 해리포터 오타쿠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워너브라더스에 의하면 극장 관객 중 60퍼센트 정도가 17세 이하 어린 관객이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월드와이드 통계가 아니고 북미 관객 대상 조사일 수도 있다).
죽음의 성물 파트 2 (2011년)를 마지막으로 해리포터 시리즈는 끝이 났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이어온 총 8편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나와 내 또래 사람들의 어린 시절, 청소년기 동안 우리들과 함께 했다. 이 시리즈는 훌륭한 영화 공부 교과서였고 원작 소설도 강제로 읽게 만드는 독서 가이드였다.
8편의 영화를 제작하는데 4명의 감독들이 메가폰을 잡았고 영화마다 작품성이나 완성도에 큰 격차가 존재한다.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지만 8편의 영화 중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연출했던 아즈카반의 죄수, 3번째 영화가 가장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8편의 영화 모두 사랑함. 도비와 볼드모트 대사 외우는 걸 즐기곤 했다). 영화 아즈카반의 죄수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 기법이나 거울 속에서 현실로 이어지는 카메라 워킹 등의 기법으로 영화학도들을 흥분케 했다. 또한 1,2 편의 유치했던, 마치 소형 로켓이 ‘퓽’ 하고 튀어나가는 듯한 마법 효과음을 아주 세련되게 변화시키면서 뒤에 나온 나머지 시리즈 영화들을 성공시키는데 든든한 기둥 역할을 아주 잘 해냈다. 이 훌륭한 감독이 불의 잔 까지라도 기량을 발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나의 빅데이터로 분석해본 결과 마법사의 돌과 비밀의 방을 가장 좋아한다고 손꼽았던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시리즈 중에서 가장 밝고 행복한 결말이 마음에 쏙 들며 주인공들 어린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란다. 그런데 이 영화들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의 영화 취향은 상극이다. 이분들은 내가 극혐 하는 영화들을 좋아했다(vice-versa).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영화 추천을 잘해준다. 그래서 이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낸다. 최대한 힘 빼고 리액션만 잘하면 대화를 이어 나가는데 아무 문제없다. 비록 영화 취향은 지독하게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더라도 마음이 잘 맞는 친구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으니 관계를 이어나갈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고 생각한다.
종종 해리포터 시리즈를 전혀 관람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도대체 어릴 때 뭐하고 살았는지 묻고 싶지만 이 질문을 초면에 묻기에는 무례함의 정도가 하늘을 찌르기에 생각만 조심스레 해본다. 초딩시절부터 홍대병 비슷한 질병을 앓아 메인스트림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몇몇 취향에 맞는 영화는 좋아하지만 영화의 존재 그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우. 혹은 유치하고 오그라드는 영화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나 영화 관람 후 찾아오는 감정의 후폭풍이 너무 강력해서 보기 힘들다고 느끼는 경우 등등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해리포터를 좋아하지 않는 부분부터 영화 취향이 너무나 어긋나 있고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다 보면 인생철학, 정치관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와 같은 부분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나와 비슷한 구석이 없음에 놀라기도 한다.
가뭄에 콩 나듯 정말 드물게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를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분들과 대화할 때는 그냥 내 귀를 닫아버린다. 대화 자리를 떠나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물론 나 자신도 나의 꼰대스러움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질문 하나로 신성한 인격체를 내 멋대로 정의 내려 버리는 불경스러운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MBTI 유형도 제대로 알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은 100가지가 넘는데 하나의 영화 취향 질문으로 간단하게 인간을 분류할 수 있다고 믿는 나의 생각은 독단적이고 강압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혹자는 상대방이 가진 고유한 눈빛이나 음식취향만으로 그의 인성을 파악하기도 한다. 내가 하는 질문이 저것들과 다를게 뭐람. 언제라도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해리포터 시리즈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지 당당히 물으리라 다짐한다. 이렇게라도 내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나의 인생이 진정한 레전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