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세 Jan 14. 2021

1988년의 되새김(4) - 박스오피스

1988년 - 한국 사회의 큰 전환기 (16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정권 수립, 총선을 통한 여소야대, 5공 청문회,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 청문회, 전직 대통령의 사과 성명 및 백담사행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 연속)


무엇보다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동, 서방 양대 진영의 모든 국가가 한 자리에 모인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됨


1988년 영화계 - 국내 직배 영화사 1호인 UIP 설립 및 직배영화 개봉 - '위험한 정사' (명동 코리아, 신촌 신영극장) 


우여곡절 끝에 우리나라에 진출한 직배영화는 1990년 서울극장이 서울시내 10대 대형 개봉관들 사이에 암묵적인 금기(?)를 무너뜨리고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상영하면서 봇물처럼 진출하게 됨. 직배영화의 진출은 극장 개봉 형태를 단관에서 멀티 개봉 형태로 변모시키게 되고 결국 CGV, 메가박스 등과 같은 대형 멀티 플렉스 체인이 등장하게 되는 기폭제 역할


1988년의 주요 이슈 요약에 이어 박스오피스 정리를 시작해 봅니다.


우선 할리우드부터 살펴보면.


1. 레인맨 (감독 베리 레빈슨, 주연 더스틴 호프만, 톰 크루즈 / 미국 흥행 수익 - $172,825,435)



아버지가 남겨놓은 거액의 상속재산, 자폐증 환자인 형(더스틴 호프만)과 오로지 상속재산만을 탐내는 이기적인 동생(톰 크루즈) 사이에서 빚어지는 에피소드들과 화해의 과정을 로드 무비 형식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이듬해 오스카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더스틴 호프만)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석권합니다. 국내에서도 89년 5월 5일에 개봉하는데 당시만 해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은 흥행의 보증수표로 통하였습니다. 여전히 서울시내 주요 개봉관을 못 잡았지만 워낙에 영화의 명성이 높은 탓에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4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는 호성적을 기록합니다.


2.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는가 (WHO FRAMED ROGER RABBIT, 감독: 로버트 저멕키스. 주연: 밥 호스킨스, $156,452,370)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합성된 독특한 영화로서, 다양한 할리우드 만화 캐릭터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음과 동시에

곳곳에서 번뜩이는 재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감독 로버트 저멕키스는 국내에도 <백 투 더 퓨쳐>, <포레스트 검프> 등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이 영화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이라는 신선하고 독특한 장르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요.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폴라 익스프레스>, <베어 울프> 등의 작품 등을 통해 모션 캡처 장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년이 지난 90년에 개봉했는데 흥행성적은 신통치 못했습니다. 


3. 빅 (Big, 감독: 페니 마샬, 주연: 톰 행크스, 미국 박스오피스 $114,968,774) 


어느 날 갑자기 30살 성인의 몸을 가지게 된 13살 소년의 해프닝을 담은 영화. 동심의 세계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가 산뜻하고 동화 같은 분위기로 흘러갑니다. 특히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피아노 장난감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국내 모 캐주얼 구두 CF에서 차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국내에서도 1년 뒤인 89년 7월 15일 단성사에서 개봉하는데요. 당시 직배영화에 대한 반발 정서가 컸던 상황이라, 20세기 폭스사는 당시 자매결연을 맺고 있던 태흥영화사를 통한 간접 배급 방식으로 개봉하였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것일 뿐 본격적으로 20세기 폭스가 국내 직배 시장에 첫 발을 내딘 영화입니다. 서울에서만 21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합니다.                                


4. 트윈스 (Twins, 감독: 이반 라이트만, 주연 : 아널드 슈워제네거, 대니 드비토, $111,938,388)


<고스트 버스터즈>로 코미디와 SF, 호러, 액션에 두루 일가견이 있음을 과시하면 최고의 주가를 과시하던 이반 라이트만 감독과 당시 언제나 근엄한 얼굴로 액션 연기만을 펼치다가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 도전한 아널드 슈와츠네거가 결합하는 것으로 제작 당시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아널드 슈워제네거로 하여금 영화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당시 라이벌 배우였던 실베스터 스탤론과 확실한 차별화를 두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탤론도 92년 <오스카>라는 영화로 코미디 연기에 도전하지만 흥행에서 물을 마시고 맙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성공적인 변신도 있었지만, 대니 드비토라는 안정감 있는 배우가 있었기에 이 코미디 영화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1년 뒤인 89년 5월 개봉하여 3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합니다.

 

5. 크로커다일 던디 2 (CROCODILE DUNDEE II, 감독: 존 코넬, 주연: 폴 호간, $109,306,210)


1986년 1억 7천4백만 불의 놀라운 흥행 수익을 거둔 <크로커다일 던디>의 속편입니다. 전편에 함께 등장했다가 부부가 된 폴 호간과 린다 코즐로우스키가 함께 공연합니다. 1편의 후광을 업고 등장했지만 전편만큼의 신선함이 부족하고 한계에 부딪힌 듯한 모습이 느껴졌던 영화입니다.

 

6. 다이하드 (Die Hard, 감독: 존 맥티어난, 주연: 브루스 윌리스, $83,008,852) - 나의 최애 무비


아~~ 지금도 이 영화를 보면 흠뻑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장기 상영에 돌입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영화입니다. 그러는 바람에 88년 연말에

개봉 일정이 잡혔던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이 결국 개봉 일정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이듬해 6월에서야 개봉하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액션 영화의 교과서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한 치밀한 구성과 캐릭터 설정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초고층 나카토미 빌딩에 침입한 12명의 테러리스트들과 한판 승부를 펼치는 존 맥클레인 형사로 등장한 브루스 윌리스는 이전까지의 액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특유의 넉살과 입담을 과시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람보와 코만도로 대표되던 근육질의 액션스타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하게 허물어버린 존 맥클레인은 액션 영화의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합니다. 당시 단성사에서 이 영화를 볼 때 극장에서 박수가 2번이나 나올 정도로 영화에 대한 반응은 가히 열광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88년 국내 극장가는 어땠을까요... 올림픽이 끝난 직후 개봉한 유진선 감독의 영화 <매춘>이 83년

<애마부인> 이후 다시 한번 성애영화 열풍을 몰고 옵니다. 


                                

올림픽 이후 불어닥친 개방의 바람을 타고 한층 과감해진 표현의 자유의 바람에 대한 관객들의 욕구에 부합했던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중앙극장에서 추석 특선으로 개봉하여 4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합니다. 


당시 서울시내 극장가에서 부동의 1위는 대한극장이었습니다. 70mm 대형 스크린을 보유한 이 극장은 국내에서 가장 큰 1920석의 좌석과 더불어 매년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했는데요. 당시에는 대한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볼만한 영화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88년 대한극장에서 개봉했던 주요 영화들은 <라밤바> (20만 명), <피라미드의 공포> (37만 명) 등이 있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작품성과 재미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켜주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죠. 그리고 연말에는 88년 오스카 7개 부문을 수상한 대작 <마지막 황제>를 걸며 다시 한번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또한 88년 여름에는 홍콩 누아르의 붐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는데, 홍콩 누아르 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던

화양, 명화, 대지 극장에서 개봉한 <영웅본색 2>는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는데요. 개봉에 때맞춰 방한한

주윤발을 보기 위해 극장에 몰려든 팬들로 인해 극장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올림픽이 조성한 동서 화해무드의 분위기에 맞춰 동구권 바람이 선풍적으로 불게 되는데요.

겨울방학 시즌에 맞춰 서울시내 10대 개봉관에 내걸린 영화들의 리스트를 살펴보면,


대한 - 마지막 황제 (미국), 단성사 - 다이하드(미국), 피카디리 - 람보 3 (미국)

국도 - 서태후(중국), 중앙 -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소련), 허리우드-관심(이탈리아)

스카라 - 레드 스콜피온 (미국), 명보 - 마이클 잭슨의 문워커 (미국)입니다. 


보통 여름, 겨울 방학 대목 시즌에 미국이나 홍콩영화가 걸리던 때에 이례적으로 <서태후>와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등이 개봉한 것을 보면 당시 공산권 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로 높아졌는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9월에 개봉한 소련 영화 <전쟁과 평화>가 흥행에 성공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88년은 올림픽이라는 큰 행사가 펼쳐지면 우리나라 사회에 전반적으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던 해였습니다.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에서도 어느 때보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쏟아지면서 질적으로 양적으로 풍성한 시즌이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