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베스트 '슈퍼맨'은...
히어로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 헐리웃 박스오피스를 장악하고 있다. 2012년 '어벤져스'가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강타한 이후, 마블코믹스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들은 매년 박스오피스에 마치 프로야구의 선발투수 로테이션이 돌아가듯 개별적으로 등장하면서 관객들을 자연스레 마블코믹스의 유니버스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사실 코믹스 원작 영화로 따지자면 마블의 라이벌인 DC코믹스의 주인공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스크린에 선을 보였었다. 1978년 리처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은 전 세계 아동들로 하여금 망토를 입고 동네에서 한 번씩은 뛰어 내려 날아가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후 1981년에 등장한 '슈퍼맨2'는 한층 오락적인 요소가 강화되어 다시 한 번 영화팬들을 매료시켰다.
이후 19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은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강타함과 동시에 '배트맨'을 완벽하게 재해석하고 보듬은 팀 버튼 감독의 역량에 열광적인 찬사가 쏟아졌다.
이 때만 하더라도 DC코믹스의 대표격인 슈퍼맨과 배트맨이 지속적으로 헐리웃을 장악할 줄 알았다. 하지만 빈약한 기획력과 졸속적인 준비에 의해 탄생한 속편들은 전작의 명성을 송두리째 날려 먹었다. 1983년과 1987년에 선보인 '슈퍼맨' 3,4편은 나오지 말았어야 할 망작이었다. '슈퍼맨' 1,2편의 좋은 기억 마저도 크립톤 행성 너머로 날려 보냈다.
'배트맨'도 팀 버튼이 손을 뗀 이후 조엘 슈마허가 메가폰을 잡은 3,4편이 내리 전작들의 명성을 까먹으면서 더 이상 배트맨 시리즈에 대한 기획은 추진되지 않았다. 오랜 기간 동면에 들어갔던 DC코믹스는 2005년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배트맨 시리즈의 새로운 탄생을 맡겼다.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을 완벽하게 살려내고 주변 캐릭터들의 생명력도 확실하게 불어 넣었다. 기존에 묻혀져 있던 고든 경감 캐릭터를 재조명시킴과 동시에 주변 악당들에게도 스토리텔링을 촘촘히 심어 놓으면서 코믹스를 못봤던 관객들도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배트맨' 시리즈는 권토중래에 성공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제작사인 워너 브러더스는 '슈퍼맨' 시리즈의 권토중래를 오랜 기간 슈퍼맨 시리즈의 마니아를 자처한 브라이언 싱어에게 맡겼다. '슈퍼맨 리턴즈'연출을 위해 자신의 출세작 중의 하나인 'X맨'시리즈의 연출까지 포기한 싱어는 오프닝부터 1978년 원작에 대한 오마주를 표하며 야심찬 오프닝을 선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은 1978년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에서 단 한 발짝도 진화하지 못한 채 예전 슈퍼맨의 기억을 답습하는데 그쳤다.
이후 후속편 계획은 없던 일이 되었다. 2006년 '슈퍼맨 리턴즈'의 실패 이후 7년 동안 묻혀져 있던 '슈퍼맨'은 2013년 '300'을 연출한 스타일의 대가 잭 슈나이더에 의해 새롭게 리부트되었다. 제목도 '배트맨'이 다른 애칭인 '다크 나이트'를 사용한 것처럼 '슈퍼맨'의 또 다른 호칭인 '맨 오브 스틸'로 명명하고 슈퍼맨의 탄생과정부터 새로운 구성과 표현으로 기존 시리즈와 차별화를 꾀하였다. 일단 '슈퍼맨' 시리즈는 발랄한(?) 느낌의 슈퍼히어로 무비였지만 잭 슈나이더는 '슈퍼맨'에 '300'의 색깔을 꽤 많이 입혔다.
분위기 자체도 진중하고 꽤나 어두워졌다. 일단 잭 슈나이더 판 '슈퍼맨' 시리즈의 첫 출발인 '맨 오브 스틸'은 슈퍼맨 시리즈의 새로운 재해석으로 인정받을 만한 흥행을 기록했다. 그러나 3년 후 야심차게 슈퍼맨과 배트맨의 맞짱 한판을 담은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은 개봉과 함께 온갖 처참할 정도의 악평에 시달리며 스타일을 구기게 된다. 특히나 자신들이 엄마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치열한 혈투를 펼치던 그들의 싸움이 중단된다는 설정은 실소를 자아낼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내러티브였다.
그나마 '맨 오브 스틸'을 통해 슈퍼맨에 대해 새롭게 구성된 좋은 이미지를 지녔던 관객들의 등마저 되돌리게 할만큼 '배트맨 대 슈퍼맨'이 선보인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제목은 '배트맨 대 슈퍼맨'이었지만 정작 가장 돋보였던 캐릭터는 지리멸렬하게 흐르던 영화에 한 줄기 희망을 안겨줬던 갤 가돗의 원더우먼이었을만큼 새롭게 리부트된 슈퍼맨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는 아예 탄생하지 말았을 것을 이란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실망과 체념을 반복하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을 둘 슈퍼맨 영화는 돌고 돌아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이란 노래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바로 이 영화이다. 1981년에 개봉한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슈퍼맨2'.
필자기 이 영화를 처음 접한 장소는 4호선 충무로 역이 개통되기 이전의 대한극장. 당시 반포에서 대한극장을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지하철 3,4호선이 동시에 개통되고 난 이후, 대한극장 가는 교통편은 너무나도 편리해졌다. ) 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대한극장의 70mm 대형 스크린에서 슈퍼맨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는 수고 쯤은 감수하기로 결심했고, 그런 보람은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지금 봐도 특수효과는 자연스러우며 조드 장군 일당과 슈퍼맨이 펼치는 시가 전투 장면은 '맨 오브 스틸'의 정신산란한 액션장면과 견주어도 꿀리지 않는다. 연인 로이스 레인을 위해 잠시 인간계로 돌아오지만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가야할 곳'이 따로 있음을 깨달은 슈퍼맨이 정체성을 되찾고 그리고 클립톤 캡슐의 특성을 역이용하여 마지막 반전을 펼치즌 장면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당시 렉스 루터로 나온 진 해크먼이란 배우의 존재조차 전혀 모르던 시절, 필자는 진 해크먼을 보면서 못생기고 평범한 아저씨가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것 아닌가라는 불평을 속으로 삭힌 바 있었다. 그러나 당시 출연 배우들 중 진 해크먼은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배우였다. (그의 진가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1971년 작 '프렌치 커넥션'을 꼭 보기를 강추하는 바이다.)
1920석의 초대형 극장인 대한극장의 70mm 대형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웅장한 액션을 만끽하면서 웃고 즐기고 함께 박수치던 그 때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때의 풍경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벌써 36년전 이야기이다. 프로야구가 개막하지도 않은 시절이었다.
만약 당시에 디지털카메라가 있었다면 그 당시의 대한극장 풍경을 꼭 담았을 것이다. 1981년 대한극장에서 '슈퍼맨2'를 접한 이후 5년 뒤, 집에 처음으로 VTR이 장만되었던 그 때, '슈퍼맨2'를 TV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 일요일 저녁 안방을 책임지던 KBS1의 명화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 특집을 방영했는데, 그 중에 '슈퍼맨2'도 포함되어 방영된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늘 터틀넥 티를 입고 등장하는 영화평론가 정영일 아저씨의 구수한 해설이 곁들여지면 영화가 더욱 보고 싶은 기대감이 치솟아 오른다.
이 영화를 한 번 보는 것으로 모자라 예약녹화까지 했고, 이후 수십번을 되돌려봤다. 볼 때마다 존 윌리엄스의 그 유명한 OST가 항상 엔돌핀과 흥분의 아드레날린 수치를 상승시켜주었다.
여전히 내 마음속의 슈퍼맨은 1981년 초대형 극장인 대한극장의 정겨운 추억과 더불어 자리하고 있다. 이미 슈퍼맨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장면은 그 당시에 마스터되었다. 더 이상 어떤 현란한 특수효과도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빠진 상태에서는 슈퍼맨의 추억을 뒤집어 놓기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