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를 넘어 홍콩 느와르 전성시대의 서막을 열어젖힌 '영웅본색2
지금도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영화의 오프닝을 꼽는다면 1987년에 개봉한 홍콩영화 '영웅본색'의 오프닝이다. 악몽에 시달리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깨어난 송자호(적룡)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곧바로 흐르기 시작하는 비장한 톤의 테마음악. 장면이 바뀌어 송자호의 영원한 동지 소마(주윤발)와 함께 만난 후, 그들의 본거지로 출근하고 그 곳에서 위조지폐를 찍어내는 장면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들의 캐릭터를 몸짓만으로 강렬하게 선사하는 오프닝(너무도 잘 알려진 소마가 담뱃불로 위조지폐를 태우는 장면)은 영화의 몰입도를 일거에 높여준다.
기존 홍콩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오프닝이라 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비장함과 흥겨움이 넘치는 테마곡과 더불어 주인공들이 버버리 스타일의 코트를 입고 펼치는 '훗까시'의 향연은 자연스레 홍콩 느와르의 스타일리쉬한 매력을 전파한다.
영화 '영웅본색'이 매니아들을 열광하게 만든 것은 매력적인 오프닝에 이어 본편에서는 사나이의 의리 그리고 형제간의 어긋난 우애를 영화 전편에 걸쳐 애절하고 박진감 넘치게 묘사한 오우삼 감독의 연출력이다.
물론 주윤발, 적룡, 장국영, 이자웅 이라는 훌륭한 배우들의 열연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을 것이다. 2010년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한국영화 '무적자'에 꽤 많은 기대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영화는 오프닝 장면에 잠깐 흐르던 영웅본색의 테마곡을 제외하곤 왜 만들었을까라는 의문만을 머릿 속에 계속 맴돌게 만든 졸작이었다.
영화 '무적자'의 실패는 단순히 홍콩 느와르에서 보여준 스타일만 흉내내기에 급급하다 등장인물 캐릭터의 한국화에 실패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영웅본색'은 스타일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남자들의 의리와 우정을 꿋꿋하게 강조하고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만화같은 전개와 주인공들의 기관총은 무한 장전되는 황당한 장면들도 곳곳에 드러나지만 느와르의 축을 이루는 남자들의 의리만큼은 진득하게 간직한다.
2013년 박훈정 감독의 느와르 '신세계'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는 극 중에서 보여준 정청(황정민)과 이자성(이정재)간의 피보다도 더 진한 의리가 내러티브를 장악하고 결국 영화 속에서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 개봉한 '영웅본색'은 당시 서울시내에서 비주류 개봉관이라 할 수 있는 서대문의 화양극장, 영등포의 명화극장, 미아리의 대지극장 등에서 개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9,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깜짝 흥행을 기록하였다. 사실 영화관에 입장한 관객 수보다 당시 유행하던 불법 복제 비디오를 통해 '영웅본색'을 접했던 숫자는 비공식적으로 10만을 넘어섰을 거라 단언해본다.
1987년 홍콩 느와르의 붐을 촉발시킨 '영웅본색' 돌풍은 수많은 아류작의 수입을 촉발시켰고, 공식적인 '영웅본색2'가 나오기 전에 '영웅본색'과 전혀 관계 없는 영화들이 불법 복제 비디오 시장에서 '영웅본색2'로 둔갑하는 해프닝이 펼쳐졌다. 그만큼 '영웅본색2'에 대한 기대감은 폭발적이었다.
마침내 1988년 7월 '영웅본색2'가 개봉하였다. 1편과 동일하게 화양,명화,대지 이 세 곳의 비주류 개봉관에서 선보였다. 하지만 1988년 7월만큼은 이들 3개의 비주류 개봉관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었다. 1988년 여름 흥행의 중심에 우뚝 섰다. 주연배우 주윤발이 내한한 날 화양극장 로비는 영화관 개관이래 역대 최다 인파가 운집하였다. 훗날 화양극장이 추억의 상영관으로 탈바꿈한 이후에도 1988년 7월 당시 주윤발과 함께 했던 추억은 생생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영웅본색2'는 전작에 비해 오락적인 요소와 이야기 거리가 한층 다양하게 보강되었다. 전편에서 장렬하게 의리를 지키며 전사한 소마(주윤발)의 쌍둥이 동생이 형이 마지막에 걸치던 총알 자국이 송송히 새겨져 있는 코트를 입고 쌍권총을 발사하는 장면과 아우라는 당시 홍콩영화 느와르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직을 거느리던 큰 형님 사숙(석천)은 과거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목숨이 위협에 처한 결정적인 순간에 총을 다시 쥐고 예전의 카리스마를 회복한다.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다소 유치하고 황당해졌지만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주윤발, 적룡, 석천이 함께 죽은 송자걸(장국영)의 복수를 위해 적의 아지트로 들어가 최후의 한판을 벌이는 장면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총에 들어 있는 총알은 절대 떨어지는 일이 없고, 심지어 백병전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휘두르는 칼에 알아서 베이는 적들의 희생정신이 투철하게 발휘되지만 여하튼 한땀한땀의 장면들에서 홍콩 느와르의 백미를 느끼게 하는 짜릿함이 배어난다.
'영웅본색2'는 1988년 7월 서울에서만 26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여세를 몰아 이듬해 주윤발은 대형 음료회사의 우유 탄산음료 '밀키스'광고에 오토바이를 타고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등장한다. 그리고 강렬한 한마디! '싸랑해요! 밀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