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내용은 곧 출간될 김진만 PD의 환경에세이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출간될 도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 낯익지만, 때론 낯설기도 한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지정 멸종 위기종이다.
해외 다큐멘터리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에 고라니가 지천으로 널려 있으며 사냥도 가능한 유해조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란다.
전 세계 고라니의 90퍼센트가 한반도에서 살아간다.
또한, 멧돼지, 여우, 수달, 삵처럼 고라니도 순우리말이다.
이쯤 되면, 한국은 고라니의 천국이요, 고라니는 대표적인 우리 토종동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비무장지대 인근의 장항습지 같은 곳에서 촬영하다 보면 해가 미처 뜨지 않은 새벽녘에 안개 낀 호수를 유유히 헤엄쳐 나가는 고라니를 만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코뿔소나 버팔로 등을 보면서 부러웠던 자연의 풍성함을 한반도에서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그래, 우리에겐 고라니가 있어!’ 하는 자부심 같은 것이 뿜뿜 솟는달까.
세계 멸종 위기종이 한반도에는 수십만 마리가 살아가고 있으니 자부심은 들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이게 정상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 비슷한 예가 19세기 미국에서도 있었다.
한때, 옐로스톤국립공원은 늑대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늑대가 시도 때도 없이 민가에 내려와 가축들을 물어갔기 때문이다.
결국, 늑대 소탕이 본격적으로 이뤄졌고 1926년 이후 옐로스톤에는 늑대가 자취를 감췄다.
늑대가 사라지자 말코손바닥사슴의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이들은 언덕과 초지의 초목을 먹어 치우며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다.
관계자들은 긴 논의와 준비 끝에 사라졌던 늑대를 다시 불러왔다.
늑대가 돌아오자 말코손바닥사슴 수가 줄어들었고, 생태계가 조금씩 회복되었다.
옐로스톤국립공원 일화가 주는 교훈은 인간이 임의로 자연의 종을 없애거나 바꾸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고라니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전부다.
고라니의 개체 수가 지금은 증가하고 있다고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멸종의 길로 치달을 수도 있다.
고라니가 사라지면 한반도의 숲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고라니가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지구상에서 고라니가 멸종하는 것과 같다.
우리 주변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야생동물이 있고 자연 속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인간에 의해 이 균형이 깨어지고 야생동물이 사라진다면, 우리 인간도 살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