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아드리아해의 어느 봄날의 빛
지난해 4월 다녀온 크로아티아 9박 10일의 여행기입니다.
티스토리에 있던 글을 정리하면서 옮겨 두는 글을 조금 다듬어 연재 글로 만들었습니다.
베를린에서 살다 보면 겨울이 하나의 형벌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온다. 해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해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마치 두꺼운 유리 너머로 들여다보이는 것처럼, 존재하되 닿지 않는다. 그래서 해마다 부활절이 다가오면 나는 몸보다 먼저 마음이 남쪽으로 향한다. 스페인이거나 이탈리아거나, 아무튼 빛이 있는 곳.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진짜 햇볕이 있는 곳.
올해 우리 가족이 고른 목적지는 크로아티아였다. 발칸반도의 동남부, 내게는 처음인 땅. 스플리트(Split), 흐바르 섬(Hvar), 그리고 시베닉(Šibenik). 열흘의 일정.
우리는 관광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인파가 몰리는 곳을 피하고, 정해진 코스를 따라 사진을 찍는 일에 별로 흥미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보다 단순하다. 어딘가에 머무르는 것, 빛 속에 앉아 있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을 온전히 하는 것.
새벽 5시의 베를린 공항은 아직 꿈과 현실의 경계 위에 있다. 아침 6시 50분 출발. 비행기는 1시간 50분을 날아 스플리트 공항에 내려앉는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공기가 바뀐다.
짠내. 정확히는 짠내와 해초 냄새가 뒤섞인 어떤 것. 같은 지중해권 바다라고 해도 아드리아해는 다르다.
덜 세련되고, 더 날것이다.
어릴 적 한국 바다에서 맡던 바로 그 냄새. 기억이 후각을 통해 불시에 돌아오는 것처럼, 공항 출구를 벗어나는 순간 나는 잠시 다른 시간 속에 있었다.
렌터카를 빌렸다. Check24에서 꼼꼼히 후기를 살핀 끝에 풀 보험으로 하루 15유로. 독일 기준으로는 놀랍도록 저렴하다. 하지만 스플리트의 도로는 독일과 다르다. 좁고, 복잡하고, 운전자들은 규칙보다 감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몇 분간은 그 리듬에 익숙해지는 데 집중해야 했다.
시내에 주차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무료 공간도 군데군데 있고, 유료라 해도 한 시간에 80센트. 선착장 옆에 차를 세우고 걸어 나오면, 거기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 있다. 로마 황제가 자신의 노년을 위해 세운 거처. 몇 백 년이 지나는 동안 그 안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지금은 궁전의 벽이 도시의 골목이 되어 있다. 역사가 건축물 안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 자체가 역사 속에서 살아남아 일상이 된 것이다.
Riva 거리는 활기로 넘쳤다.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 산책로, 카페의 빈 의자들이 바다 쪽을 향해 놓여 있고, 사람들은 걷거나 앉아서 그냥 존재하고 있었다.
북유럽의 도시가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면, 여기 사람들은 그냥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느긋함이 부러웠다.
바닷가에 왔으니 해산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의무처럼 느껴졌고, 우리는 항구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가격은 예상보다 높았다. 베를린과 비슷하거나 어떤 것은 더 비쌌다. 하지만 음식이 입에 들어오는 순간, 그 계산은 의미를 잃었다.
통통하고 붉고, 속살이 달고 단단한 새우. 독도새우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오밀조밀한 식감, 씹을 때 터지는 바다의 맛. 여기 새우가 그랬다. 미디엄으로 튀겨져 나온 그것은 지나치게 익히지도, 덜 익히지도 않은 정확한 온도에서 조리된 것이었다.
칼라마리는 또 어떤가. 작은 오징어를 바삭하게 튀긴 것인데, 독일에서는 절대 이런 신선함을 만날 수 없다. 반죽 속에 갇혀 있던 바다 냄새가 한 입에 풀려 나왔다.
맥주는 PAN. 자그레브에서 온 이 맥주는 흑맥주처럼 색이 짙고 묵직하지만, 쓴맛이 없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마치 겨울 끝에 처음 마시는 따뜻한 것처럼 부드럽고, 안도감 같은 것이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미 결심했다. 이 여행 동안 이것만 마시겠다고.
흐바르 섬으로 들어가려면 차를 페리에 실어야 한다.
흐바르 그라드(Hvar Grad)로 바로 가는 배가 아니라 스타리그라드(Stari Grad), '오래된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곳으로 향하는 페리를 타야 한다.
출발 한 시간 반 전부터 대기가 필요하다. 선착장을 찾는 것이 처음엔 헷갈렸는데 구글맵에 목적지를 입력할 때 뒤에 'ferry'를 붙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차량 선적 페리는 Gat Sv. Petra로 가면 된다.
차가 없다면 흐바르 중심부로 바로 오는 고속 페리를 이용하면 된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스타리그라드 선착장에 내리면 바로 앞에 대형마트와 드러그스토어 DM이 있다. 흐바르 섬 안에서도 뮐러를 찾을 수 있지만 품목이 적다. 비상약이나 생필품은 여기서 미리 챙기는 것이 낫다.
배에서 내려 116번 도로를 타고 섬을 가로지른다. 도로는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한쪽은 돌산, 다른 한쪽은 낭떠러지 너머의 바다.
나는 그 길을 달리면서 말을 잃었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럽에 산 지 19년이 되었다. 파리의 야경을 보았고, 프라하의 붉은 지붕들을 보았고, 오스트리아 알프스 깊숙한 계곡 속 에메랄드빛 물도 보았다. 그것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는 어딘가 인간의 손이 닿아 있었다. 연마되고, 정돈되고, 관광지로 포장된 아름다움.
흐바르는 달랐다.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바다는 오스트리아 계곡에서 보았던 그 에메랄드빛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다 전체를 덮고 있었다. 끝없이.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밟아온 돌길은 반질하게 닳아 햇빛을 받으면 윤슬처럼 빛났다. 광장에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고, 정시마다 성당 종이 울렸다. 이륜차 소리가 골목 사이로 잦아들었다.
모두 깨어 있었지만, 나는 꿈 안에 있는 것 같았다.
폴 오스터는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연이 우리를 특정한 장소로 데려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나는 흐바르에 도착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처음 몸으로 이해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단순히 햇볕이 아니었다. 나는 현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형용사 없이, 그냥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흐바르에서 보내는 5일간의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