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종에서 보낸 며칠
(원고를 마감하는 심정으로 디종에서 사 온 와인을 마시며 이 글을 적고 있다.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오늘은 반드시 글을 완성하고 싶다.)
내가 타야 할 기차는
8시 30분이 다 되도록 플랫폼 안으로 들어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전광판만 애타게 쳐다볼 뿐
애타는 내 마음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너무도 많았던 나는 기차역 안에 있는 포숑(프랑스에서 유명한 디저트브랜드)에서 산 마카롱 네 개 중에 하나를 유럽사람들처럼 작은 입으로 세, 네 번쯤 나눠 먹었다.
드디어 VOIE(플랫폼)가 나오고 20킬로짜리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기차로 향한다.
나는 일찍 표를 예매한 덕에 1등석을 싸게 구입했는데
평일 저녁 마지막 기차에는 1등석을 따로 예매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자리가 남아돌았다.
내가 탄 기차칸에는 나 말고 세 사람이 더 탔는데
낮동안 열심히 활동을 했는지 땀냄새가 기차칸을 다 메울 만큼 강력했던 20대 남자와 다정하게 스도쿠를 함께 하고 있던 노부부 그리고 동양인 여자뿐이었다.
기차를 기다리며 손님이 없어 점원마저 놀러 갔던 그 폴 빵집에서 사 둔 잠봉크뤼 샌드위치를 꺼내서 너무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한 입씩 베어 물었다.
빵에 붙은 치아씨앗이 자꾸 이에 끼기는 했지만 역시나 맛있는 프랑스빵이다.
(프랑스 생활 6년 반 살아본 자로서, 바게트를 먹어도 입천장이 까이지 않은 내공이 쌓였다. 그런데 이 내공을 다 쌓고 바삭한 바게트를 먹을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다. 독일은 참으로 음식에 가혹한 나라임에 분명하다.)
잠봉크뤼는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많아서 먹다 쉬다를 세-네 번은 반복했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몰스킨 수첩을 꺼내 들고 생각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더 적을 게 없을 때에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천천히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디종
프랑스 동쪽에 위치한 DIJON은 머스터드(겨자)의 도시 그리고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레드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디종이다.
그리고 화이트 와인에 크렘드 카시(블랙커런트 리퀴드)를 섞은 프랑스 칵테일(주로 식전주로 마심)인 키르(Kir)가 처음 만들어지기도 한 도시이다.
이번에 두 번째 방문이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물론 친구를 만나러 왔고 이번에도 역시 그 친구를 만나러 왔다.
익숙한 기차역, 건물 불빛들이 오늘의 짧았던 여정을 안정시켜 주는 기분이었다.
낯선 공간이지만 오늘 밤은 잠을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아침 친구는 앞집 빵집에서 팽오쇼콜라와 크로와상을 사다 주고 찐한 커피도 만들어줬다.
이 맛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아침에 마시는 진한 커피와 버터 가득한 부드럽고 촉촉한 이 빵 내음이 내가 프랑스에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나만이 느낄 수 있는(아니 내가 느꼈던) 프랑스적인 삶이랄까.
친구와 나는 일 년 하고 4개월 정도 만에 얼굴을 보는데
친구들 중에서는 이 정도면 자주 보는 사이이다.
어떤 운명인지 몰라도 우리는 사방으로 다 흩어져 살게 된 인생 때문에 3-5년 주기별로 모두 모이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라 하면
스무 살 때 지금 이 친구(프랑스에 사는) M의 소개로 알게 된 J와 S가 있다.
M과 H는 나의 어릴 적 친구들이고 M은 서울에서 알게 된 J와 S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며 우리는 독수리 오 형제는 는 아니고 아이보리 테이블이라는 그룹(?) 활동(?) 중인...
뭔가 이상한데? 활동이고 뭐고 그냥 우리는 스무 살 때 그렇게 만나 지금까지도 정신적으로 가장 많은 위로와 공감을 받으며 의지하는 친구들이다.
우리가 이토록 서로의 존재에 의미가 깊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실제로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함께 보낸 시간이 아주 짧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무 살 가을, 다섯이서 처음 만났고
그다음 해 봄 나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그해쯤 M과 J는 군 입대를 했다.
제대를 하고 M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왔고 그쯤 S도 호주로 유학을 갔다.
이렇게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가면서 우리는 2년에 한 번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서 한번 만나 안부를 전하고 같은 공간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또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져 갔다.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다시 만나도 지난주에 만난 것처럼 우린 어제의 안부를 묻고 머리를 자르지 그랬냐 살 좀 쪄라라는 잔소리도 해댄다.
그렇게 늘 같이 살아가는 것처럼 지구반대편에서 우리는 서로가 원래 존재했던 것처럼 존재한다.
하루는 하릴없이 집안에서 뒹굴기도 하고
또 하루는 해가 질 무렵 집 앞 광장으로 나가 맥주와 커피를 마셨다.
또 어떤 날은 바게트와 치즈를 사서 멀리 있는 호수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키르주를 만들었던 그 시장의 동상이 있던 호수는 마치 바다 같아서 우리 고향 바다에 온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울컥할 뻔했지만
날씨가 너무 뜨겁고 햇살이 따가워서 그런 생각은 길게 가지 못 했다.
만나지 못했던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들으며 지나버린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며 우리의 시간 속에 채워 넣었다.
돌아오기 전날에는 시내에 나가 디종 특산품인 maille 머스터드 가게에 들러 트뤼플과 고수가 들어간 머스터드를 사고 디종 자석도 샀다.
그리고 친구에게 프랑스 전통 겨자 머스터드를 담는 작은 종지와 디종 기념품도 선물 받았다.
아줌마가 되었으니 와인이나 머스터드처럼 -남는 건 먹는 게 최고- 음식을 기념품으로 챙기게 되었다.
(역시 결혼이 최고다. 미혼인 들아!)
기차역에 다시 몸을 싣고 파리로 향하며
친구가 이곳을 떠나고 나면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있을까?
친구만큼은 아니더라도 이곳을 떠나는 일은 나에게도 아쉬움이 남았다.
언제가 남편을 데리고 부르고뉴 지역을 여행하게 되면 그때 꼭 이곳에 다시 들러 머스터드를 사고 부르고뉴 와인을 몇 병 사야지.
그리고 M을 생각하며 바다 같던 호수에 가서 시드흐를 마셔야겠다.
그때는 Doux 말고 Brut(탄산이 더 강한)를 주문하겠어.라고 다짐한다.
기차는 정각에 출발하고 친구는 나의 기차가 플랫폼에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준다.
고맙고 소중한 것들을 남겨두고 다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