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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Aug 08. 2016

여행 :프랑스 여행1

리옹역에서 보낸 2시간 27

결혼을 하고 난 후로 혼자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도 아니고 그러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지금 잠시 멈춰 뒤돌아 보니 오롯이 날 위한 시간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6월이면 프랑스에서 미술 공부를 하는 친구가 마스터 과정을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전환점인 시기가 오니 그때에 맞춰 프랑스에 다녀오기로 계획했다.

- 비행기 표는 두어 달 전쯤 사놓으면 파리-베를린 에어프랑스가 100유로 안팎이라 부담도 되지 않으니까,

  사실 이제는 이런 비용이 부담이 되는 상황도 아니다.

  학생 때는 100유로도 안되는 돈도 아끼고 아껴야 했으니까 어디 감히 친구만나러 비행기를 탄단 말인가!

  그러했기에 그때는 아무 이유 없이 떠날 생각을 하고 살지 못 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야만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팍팍했던 삶의 순간이었다.-



6월 21일. 오랜만에 빠히(파리를 불어 발음으로 하면 이렇게 된다.)

유로 월드컵 기간이라 시내로 들어가는 길이 꽉 막혔다.

난생처음 타 본 공항 리무진버스였지만 일반 공항-시내를 연결해주는 Roissy 버스와 다를 게 없다.

일반버스를 타든 리무진버스를 타든 꽉 막힌 파리의 교통체증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일단, 나의 일정은 이랬다.

오후 3시쯤 공항에 도착 후, 바로 시내로 들어가서 기차역에 짐을 맡겨 두고 미술관에서 전시 하나를 본 후. 빵집에 들러 따뜻한 키쉬로렌으로로 저녁을 해결하고 여유롭게 파리 냄새 맡으며 산책 좀 하다가 여유롭게 Gare de Lyon으로 돌아와 짐을 찾고 8시 25분 기차 타기.


빠리공항에 도착해 남편과 기다리고 있을 친구에게 연락해주고

이것저것 검색: 보고 싶었던 전시 -그랑팔레와 퐁피두-는 닫았다(화요일은 정기휴일)

[그럼 파리 현대미술관(MAM)에 갔다가 예전에 살던 집 근처 빵집에서 커피 마시고 돌아와야지] 로 계획 세움

(아차, 거기까지 간 김에 샹젤리제에 있는 갭매장에 들러 속옷도 몇 개 사 와야지)


리무진버스를 타고 일단 짐을 맡길 기차역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Gare de lyon까지 가는데 무려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러니까 벌써 5시-

짐 맡기는 곳을 찾느라 지하까지 내려가 헤매다 보니 30분을 또 까먹었다.

-그러니까 벌써 5시 30분-


이 애매한 시간에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뭘까?

이미 미술관은 포기하고 맛있는 커피랑 빵을 여유롭게 먹고 갭 매장에 들러야지(슬슬 갭에 집착이 생김)

일단 추억의 장소 16구로 출발

-파리까지 가서 갭이라니! 하지만 베를린에는 GAP이 없어서 왠지 모를 집착이 생겼다-

파리 외곽과 시내를 연결하는 기차 RER A를 타고 세 정거장을 가면 샤를드골에뜨왈에 도착한다.

샤를드골에뜨왈이란 오~ 샹젤리제 노래 속에 나온 그곳 개선문이다.

샹젤리제와 오벨리스트가 있는 그 중간쯤 갭 매장이 있는데 거기에 가려고 난 일단 여기에서 내렸다.

아, 오늘은 21일 Fete de la musique하는 날이라 시내가 들뜬 분위기로 분주하다.

길 따라 내려가는 길에 프랑스 대형 체인 슈퍼마켓 모노프리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도 마셔야지 하며 걷는데,

걷고 걸어도 모노프리도 갭도 안 보인다.

마음은 이미 포기 상태이나 다리는 무의식중에 전진 중...

드디어 도착한 샹젤리제 대로변에 있던 모노프리는 식품 코너는 싹 없애버리고 옷이랑 관광상품만 팔고 있다.

(그래, 이 비싼 거리에서 식료품 가게로는 살아남기 힘들겠지.)


스무디랑 바두와(프랑스 대표 탄산수 브랜드)을 사서 갭을 찾아 내려내려갔지만, 대로끝에 다다라서야 매장을 발견했다.

그래 맞다. 여기에 오려면 샤를드골에뜨왈이 아니라 프랑클린루즈벨트에서 내렸어야 하는데(멍청이)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갭은 아직 세일도 안 하고 있고 운동복 사러 갔는데

얘네는 몇 년 전 시즌이랑 달라진 게 없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샹젤리제대로를 걸었는가)


뭘하지 뭘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며 걷다가 샹젤리제 뒷편에 있는 거리로 들어가

마음에 드는 빵집에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파리에 왔는데 아직 커피도 한 잔 마시지 못 했단 말이다!)

고민끝에 아직은 써먹을만한 나의 불어로 주문을 한다.  

"쥬프랑드흐 탁흐트오프와흐, 엉 카페 실부프레" [탁하트오프와흐]는 부드럽고 빠르게 연이어 발음을 해주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입밖으로 나온 불어라 어색하기 짝이없다. 마치 관광객이 생존단어로 외워와 말하는 듯하달까. (다 망했어) -

너무 좋아하는 서양 배 타르트(Tarte aux poires)와 에스프레소 한잔 시켜서 창가가 보이는 바에 앉아 한입 한입 베어 물었다.


(샹젤리제대로 뒤편에 있던 어떤 블랑제리에서 먹었던 서양배 타르트)


피로한 내 영혼까지 달래주었던 맛이랄까.

(그래도 다 망했어.)


버터 가득한 타르트와 에스프레소를 다 마시고 났지만 나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서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은데 시간이 너무 빠듯했기에 머리가 정지한 기분이었다.

에어프랑스 기내잡지에서 본 요즘 핫한 커피가게가 있다길래 그곳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메트로를 탔는데

어랏 이 와중에 방향도 잘 못 탔다. ( 아, 나는 더 이상 파리지앤느가 아님을... 인정/확정)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정신 차리고 보니 14호선 st. Lasare 내가 가야 하는 곳은 2호선 Terne

한 번에 갈 방법은 없다. 최소 두 번은 갈아타야 한다. 현재 시각은 6시50분

목적지까지 가기에는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퇴근시간에 맞물린 이 지옥같은 메트로를 다시 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추억을 되새기며 시내 구경을 하려던 마음은 고쳐먹고 안전한 기차 탑승을 위해서 14호선을 다시 타고 기차역으로 간다.


기차는 8시 25분 현재 시각 7시

이제는 시간이 너무 여유로운 것이 문제

결혼 전에는 분명 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기차역에 8시 20분쯤 도착해서 플랫폼으로 미친듯이 뛰어가 아무 열차칸에 올라타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내 좌석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제 더 이상 그러하지 못 하다.

내 남편은 세상 살면서 싫은게 별로 없는 사람인데 그 몇 안되는 것 중에서도 공항에 늦는 걸 제일 싫어한다.

그래서 늘 안전하게 두 시간은 일찍 도착해야 마음이 놓이시는 분이다. 그 덕에 내가 이렇게 변했다.

(아니 국내선(유럽 내) 타는데도 왜 두 시간이나 먼저 도착해야 하는가 말인가)


어쨌든 나는 기차역에서 1시간 25분을 보내야 하는데 무엇을 하나?

하릴없이 기차역을 몇 바퀴를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이 사진을 보더니 내가 기분이 몹시 언짢았냐고 물었다. 그 말을 이해해버린 내가 싫어져버렸다.)



(내가 없는 사이 SNCF 컬러가 바뀌었다... 이유 모를 섭섭함이 몰려왔다)


(리옹역-gare de lyon은 프랑스 남쪽 지역으로 가는 기차들을 타는 곳으로 기차역 이름은 프랑스 도시인 리옹에서 따왔다. 기차역 내부에 있는 이 사인은 도시리옹(lyon)과 사자(lion)라는 동음 이어 단어를 이용해서 리옹역을 위트 있게 표현해놓았다.)



기차역을 몇 바퀴 돌고나니 허기가 져서 파리의 파리바게트와 상응하는 폴 빵집에 샌드위치를 사러 갔는데 플랫폼 바로 옆에 있는 빵집은 줄이 너무 길다.

(나는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메트로를 타러 가는 길과 마주하는 곳 그 어귀에

폴 빵집이 하나 더 있어 그곳으로 갔다.


(갸흐드 리옹 지하에 위치한 뽈 빵집 - 손님이 드문드문 오는 곳이라 직원도 마실 나가고 없는 작은 매장이다.)


학교 다닐 때 점심으로 많이도 먹었던 치즈 한 장 햄 한 장 얹어진 기본 샌드위치 파리지앵(제일 심플하고 저렴한)을 추억의 맛으로 먹어볼까 하다가

나는 이제 신분이 변경되었으니 좀 더 맛있는 걸 먹어도 되지 않겠나 싶어

잠봉 크뤼(생햄- 하몬)가 들어간 바게트 샌드위치와 카페 알롱제 (아메리카노)를 샀다.

자리 잡아 커피를 마시고 샌드위치는 기차 안에서 먹기로 하고 가방 안에 넣어놓았다.

커피를 다 마시고도 할 일이 없어 맞은편에 있던 Replay였던가 빨간색 간판에 하얀색 폰트가 적힌 책방에 들러 예술잡지 한 권 사들고 나와 유료 로커에 있던 내 짐을 찾으러 지하로 다시 내려갔다.

로커에서 배낭을 꺼내 들춰 메고 세 번이나 돌았을 기차역을 다시 돌아 출발하는 기차 알림이 뜨는 안내판이 잘 보이는 곳 맞은편 의자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멈춰있었다.

아직도 시간은 30분이나 남았고 나는 더 이상 시간을 때울 것도 기차역 내부에 가보지 않은 곳도 없었다.


시내 빵집에서 산 커피 맛 마카롱을 하나 꺼내서 한입 베어 물었다.


달다.

(설탕 덩어리)


작은 마카롱을 아주 조심스럽게 나눠 먹으며 아주 천천히 잡지 한 페이지를 읽고 난 후 고개를 들어보니 시간은 저녁 8시 18분.

아직도 내가 타야 할 기차는 플랫폼조차 정해지지 않았고 역내 아무런 알림도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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