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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Aug 17. 2022

늘어난 빤스를 버릴 용기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만 5년이 되어가는 현재 시점.

만삭  몸무게 비등비등한  시점의 이야기다.



이십  중후반이 되었을 무렵부터 나는 속옷만큼은 좋은 것을 입자! 주의였다.

나는 화장이나 옷을 즐기지 않은 터라

내 몸에서 어떤 한 부분은 정성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아웃렛에 가서 캘빈클라인 속옷을 처음 샀던 게 스물일곱이었던가.

그 이후 줄곧 캘빈클라인의 빤스를 즐겨 입는 중이다.

면으로 된 것 말고 부들부들하고 입은 듯 입지 않은 소재의 빤스는

입을 때마다 정갈하고  차려입은 기분을 들게  줬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도 둘째는 곧 죽어도 명품 팬티를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

혹시나 자신이 사고가 나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초라한(허름한) 팬티를 입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그 대사를 들으며, 어쩜! 나도!라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스물 이후 줄곧 나는 객지 생활을 하고 있고 혼자였다.

내가 저 길을 걷다 픽 하고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가든 지나가는 행인의 응급구조를 받든 간에

나의 의지가 아닌 순간에 나의 속옷이 노출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뭐, 이건 너무 극단의 경우를 상상한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치장하지 않는 나에 대한 작은 노력이랄까 혹은 보상일까?

화장품이랑 옷값을 아끼니 속옷이라도 좋은걸 입어보자! 하는 보상심리가 될 수도 있겠다.




빨래를 널다가 다 늘어 난 남편의 빤스를 발견했다.

세탁을 했으니 (아까워서) 한 번 더 입고 버려야지 하는 그 마음으로

 지질한 마음이 몇번이고 반복되다 다 늘어  빤스가 되어버렸다.

지금 끝내지 않으면 다음 빨래에 너를 또 마주하게 될 것이니라.

그러하여 나는 오늘 마치 새것 같은 향기롭지만 축축한 너를 결단코 처단하리다.

이 굴레에서 결단코 벗어나리라!


쓰레기통으로 가는 열 발자국은 짧지도 쉽지도 않았다.

이 빤스가 사라지면 남편의 팬티는 몇 개가 되더라?

눈을 질끈 감고 엄지와 검지로 잡고 있던 남편의  늘어진 빤스 쓰레기통에 넣었다.


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어째서 다 헤진 빤스를 버리는데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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