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만 5년이 되어가는 현재 시점.
만삭 때 몸무게와 비등비등한 이 시점의 이야기다.
이십 대 중후반이 되었을 무렵부터 나는 속옷만큼은 좋은 것을 입자! 주의였다.
나는 화장이나 옷을 즐기지 않은 터라
내 몸에서 어떤 한 부분은 정성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아웃렛에 가서 캘빈클라인 속옷을 처음 샀던 게 스물일곱이었던가.
그 이후 줄곧 캘빈클라인의 빤스를 즐겨 입는 중이다.
면으로 된 것 말고 부들부들하고 입은 듯 입지 않은 소재의 빤스는
입을 때마다 정갈하고 잘 차려입은 기분을 들게 해 줬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도 둘째는 곧 죽어도 명품 팬티를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
혹시나 자신이 사고가 나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초라한(허름한) 팬티를 입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그 대사를 들으며, 어쩜! 나도!라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스물 이후 줄곧 나는 객지 생활을 하고 있고 혼자였다.
내가 저 길을 걷다 픽 하고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가든 지나가는 행인의 응급구조를 받든 간에
나의 의지가 아닌 순간에 나의 속옷이 노출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뭐, 이건 너무 극단의 경우를 상상한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치장하지 않는 나에 대한 작은 노력이랄까 혹은 보상일까?
화장품이랑 옷값을 아끼니 속옷이라도 좋은걸 입어보자! 하는 보상심리가 될 수도 있겠다.
빨래를 널다가 다 늘어 난 남편의 빤스를 발견했다.
세탁을 했으니 (아까워서) 한 번 더 입고 버려야지 하는 그 마음으로
그 지질한 마음이 몇번이고 반복되다 다 늘어 난 빤스가 되어버렸다.
지금 끝내지 않으면 다음 빨래에 너를 또 마주하게 될 것이니라.
그러하여 나는 오늘 마치 새것 같은 향기롭지만 축축한 너를 결단코 처단하리다.
이 굴레에서 결단코 벗어나리라!
쓰레기통으로 가는 열 발자국은 짧지도 쉽지도 않았다.
이 빤스가 사라지면 남편의 팬티는 몇 개가 되더라?
눈을 질끈 감고 엄지와 검지로 잡고 있던 남편의 축 늘어진 빤스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어째서 다 헤진 빤스를 버리는데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