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오 Sep 01. 2023

이로운 생활 - 네 마음대로 살아


 "그래, 네 마음대로 살아라"

고작 만 다섯 아이에게 오늘 내가 내뱉은 말이다.

어쩌다 나는 다섯 살 아이와 감정싸움을 하고 있는 걸까.


이로는 독일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직은 독일어보다 한국말을 더 잘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보통의 만 5세에 비해 어휘력도 많고 어려운 단어들을 이해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 애가 똑똑해요~라고 자랑하려는 건 아니다. 당연하게도 가족들한테서만 천재 소리를 들을 뿐 객관적으로 보면 월등히 뛰어난 아이는 아니다.

다만, 우리 부부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말을 했다. (이것 역시 웃기지만 슬픈 숨겨진 이야기인데, 이역만리 이방인인 우리는 하루 중에 말을 할 상대라고는 나, 남편, 아이 이 세명뿐이다. 그나마 요즘은 아이가 커서 “대화“라는 것이 가능했지만, 영유아 시기에는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 말을 내뱉은 수준이었다.)

오늘의 하늘, 지금의 감정, 꽃이 어느 계절에 어떤 색으로 피어나는지, 엄마가 좋아하는 감정과 분위기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준 덕분에 어휘력이 풍부해진 듯하다.


그럼에도 아이는 아직 인생을 5년밖에 살지 않았고 말을 내뱉기 시작한 건 길어봤자 3년 차일 뿐이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투른데 예를 들어, 본인 마음대로 안될 때 투덜거리는 경우가 있다. 투덜투덜 군소리를 자꾸 해대서 나는 아이에게 말을 내뱉는 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니, 나쁜 마음을 담은 말은 내뱉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해줬었다.

하지만 아이는 내 마음이고 내 말인데 왜 그래야 하냐고 되묻는다.

네 마음이고 너의 말이지만 내뱉는 순간 네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라고 하니 또 상관없단다. 내 마음속에 있다가 나왔으니 내 것이고 내 마음은 내가 말하는 것이라고 속사포처럼 내뱉는다.

나는 설득을 해보려고 또 설명을 하지만 아이는 꼿꼿한 마음을 꺾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라고 말한다.

나의 이 철학적이고 심오한 나의 설득이 들어먹질 않으니 어른인 나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그래,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고 내뱉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주방으로 아이는 자기 방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혹은 괜찮은 척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와 냉랭해진 기운을 알아채곤 둘이 무슨 일이냐고 슬그머니 묻는다.

나 역시 다섯 살 아이의 마음처럼 뾰로통해진 마음을 ”몰라 “라는 말로 툭 내뱉고는 [저 녀석이 내 말을 안 들어 먹어 심통이 났다]는 말을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이로한테 물어봐 “라고 아이에게 넘겨 버렸다. 아이는 이미 그 일을 잊은 지 한참 되었고 아빠에게 매미처럼 매달려 상기된 얼굴로 오늘 레고 전투를 어떻게 할지 재잘거리느라 바쁘다.

뭐랄까. 뒤끝 있는 내가 진 것 같은 뭔가 모를 억울한 기분 이거 뭐지.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이 일을 다시 생각해 볼 일이 있었다.

그때 아이가 말했던 내 마음이고 내 말인데 왜 그래야 하냐는 말은 어른인 내가 생각하던 마음과는 많이 다른 종류였다.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나만 생각하고 내 말을 들어 달라는 이기주의적 사고에서 시작된 말이지만 이로가 했던 말은 독일 유치원 생활에서 습득했던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내 마음과 나의 말을 제대로 전달해야만 의사소통(대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

대다수의 독일 부모(유치원 선생님들 역시)는 아이들이 울며 격앙된 마음으로  본인의 마음을 내뱉을 때는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울음을 그치고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킨 후 그때의 상황 혹은 감정을 얘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아, 물론 조금 답답한 것도 있고 한국인 정서와 많이 안 맞긴 하지만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말을 할 때는 감정을 뺀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연습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된다. 의사들이 임시처방으로 화가 많은 어른들에게도 10초 정도 쉼을 가지면 화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으니 말이다.


사실 독일사회에는 맞고 틀림은 없다. 더욱 생각에는 그 잣대를 댈 수 없다.

각자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은 감정을 실지 않고 수용하는 것. 다름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말로 내뱉어서 이야기의 주제가 되고 그것을 다시금 생각해 볼 계기를 만드는 것 생각을 거쳐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 이 모든 과정들이 독일에서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배워 나가는 과정이었다.

새삼, 어른인 나에게도 너무 필요한 수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과 내 말은 내 마음대로 막 해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내 말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로운 생활 - 내가 왕이 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