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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10. 2021

엄마의 노동

GDP에 환산 되지 않는 노동에 대하여

컨셉진에디터스쿨 과제 - 인터뷰 실전 

Theme : Work

Column : Interview

Interviewee : 김영희(24년차 주부)


엄마의 노동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를 위해 매일 준비 되어있던 아침식사와 깨끗한 옷들, 정리 되어 있는 깔끔한 방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때로는  집안일까지 할 여력이 나지 않아 설거지나 청소를 미루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는 어떻게 우릴 챙기면서 집안일까지 했는지 생각하곤 했다. ‘엄마의 일’은 없으면 안 되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업주부에게 ‘집에서 놀기나 하지’ 라고 이야기 한다. GDP에는 환산되지 않지만 애덤 스미스씨가 국부론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엄마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다.








이름이 사라지는 것 같다 하여 자주 영희씨라 불러 드립니다.

조금 늦은 저녁, 엄마 김영희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막내 민교가 또 양치를 하지 않아서 소리치고 있었다. 전씨 집안의 엄마를 맡고 있는 김영희씨는 올해로 만 46세. 이제 막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큰 딸,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작은 딸,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막내 아들의 엄마다. 김영희씨의 고향은 부산광역시다. 어렸을 때부터 그곳에서 살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충남 논산으로 올라왔고 그 뒤로 쭉 논산에서 살고 있다. 딸이 벌써 24살이니 그녀의 주부 경력도 24년인 셈이다.


자기소개를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김영희씨는 ‘나는 누구의 엄마’라고 소개를 대신했다. “엄마들끼리 만나면 저는 누구입니다. 누구의 엄마입니다 라고 소개하고 끝이지 뭐 서로 궁금해하지도 않고 취미생활이라든가 기타 정보에 대해 말할 필요도 느끼지 못해”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아들 전민교가 옆에서 계속 찡얼 거렸다.


24년 차 주부 김영희씨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민교를 깨운다. 학교 갈 준비를 시킨다. 아침을 먹이고, 학교까지 데려다 준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집 안을 정리한다. 그 다음에 짬이 있으면 잠깐 자유시간. 민교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을 먹인다. 숙제를 봐주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저녁을 먹인다. 씻고 잘 준비를 한다. 양치 하지 않는 민교에게 양치하라고 한 번 소리를 친다. 말을 안 들어서 세 번 소리 친다.


첫째 딸, 둘째 딸, 그리고 셋째 아들까지 또 키우고 있는 그녀는 한때 사회가 원하는 슈퍼우먼이었다. 집안일은 물론, 학교 다니는 자녀들을 완벽하게 챙기고, 자아실현을 위한 일까지 하는 것! 하지만 그 결과는 건강 악화였다. “자식은 밥그릇을 타고 난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저 키운다는 생각은 잘못 됐어” 라고 말하는 김영희씨는 아이를 키우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미 둘을 키운 경험이 있지만 육아에는 정답이 없고 늘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혹자는 “셋째는 거저 키우겠네~” 한다는데 정작 엄마를 맡고 있는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세 아이를 키웠지만 셋 다 수월하지 않았어. 민교도 힘들어. 애들마다 성격도 다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니까” 특히 큰 딸인 내가 많이 힘들게 해서 그녀는 그 때의 일을 무용담처럼 자주 이야기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했다고 한다.


주부의 일은 언제나 없는 것처럼 취급 받고 늘 당연한 일로 생각 된다. 나조차 독립을 하기 전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마’가 언제나 해왔던 일들을 깨닫지 못했다. 고양이 딸을 가족으로 들이게 되면서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가사 노동, 육묘에 ‘엄마’의 일을 더욱 체험하고 있지만 그래도 고양이 딸은 대학은 안 보내도 된다. 가사노동, 육아에 대해 실제로 ‘엄마’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야 한다는 중압감이 없잖아 있지. 욕심도 나고 왠지 남들이 다하는 걸 못해주면 불안하기도 하고” 전민교가 이번에는 발이 시리다고 소리쳤다. “발이 시리면 양말을 신으면 되지. 수면양말은 서랍에 있어.”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영희씨의 남편인 전씨는 중장비 기사 일을 하고 있다. 딸들이 어렸을 땐 타지역에서 일을 했고, 집에 자주 오지 못했다. 지금도 경상도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김영희씨는 홀로 아이 셋을 키웠다. 남편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으로,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부르고, 집안일은 원래 아내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최악이야!” 전업주부로 가사, 육아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혼자서 모든 일을 다하는 것은 너무 지치는 일이라고 말하는 김영희씨는 벌써 ‘누군가의 엄마’ 라고 불린 세월이 길다. 엄마가 되면서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라고 불리게 되며 이름을 잃은 이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 그녀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내 이름이 사라져서 이름을 찾고 싶어서 일을 했어. 정체성이 없어지는 것 같았지. 그래서 그때는 많이 힘들었어”


엄마가 되면 찾아 오는 변화에 대해서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그녀는 엄마 역할을 맡으면 그런 변화가 올 것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나 때는 주변에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없었어” 결혼 하기 전에는 옷을 좋아해서 옷 장사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는 김영희씨는 “만약 알았다면 안했지!”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셋째 민교를 낳기 전에 그녀는 논산에서 꽤 이름을 날리던 강사였다. 당시 논산에 없었던 POP, 공예 등을 배워 작은 공방을 차리고 수강생을 받거나, 외부로 강의를 나가기도 했었다. “POP는 취미로 했는데 하다 보니 새로운 걸 하는 게 재밌어서 더 열심히 했지. ‘강사 김영희’였을 때는 인정을 받으니까 좋았어” 김영희씨는 집에서는 항상 자기 자신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강사 일을 시작했을 때 남편은 집안일에도, 자녀를 돌보는 것도 모두 소홀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차 끌고 타지역으로 나가는 남편 출근 시키고, 돌아와 딸들을 깨워 학교에 데려다 주고 다시 차 끌고 타지역으로 수업을 갔다가 마치고 딸을 데려오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또 저녁 수업을 하러 나가고, 집에 돌아와서 설거지, 빨래, 청소를 하는 생활을 지속했다.


“부르는 곳은 많았는데 집에 차는 한 대 밖에 없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지. 지금은 하라면 못해.” 강사 일을 하면서 주말 빼고 외부 수업을 다녔던 그녀는 주로 교육청 관할 기관들, 학교, 교육원 등으로 수업을 다녔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엄마 김영희’가 소화해내던 어마어마한 강도의 노동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일을 다니면서 즐거워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엄마가 즐거워하던 그 모습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는 셋째를 낳으면서 공방 문을 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려놓기 힘들었지. 아빠는 일도 하고 민교도 키우고 둘 다 하라는데 도와주는 것 하나 없으니까 그렇게 못하지.” 결국 김영희씨는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다.


실제로 가사노동, 육아를 병행하면서 커리어를 쌓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 그녀를 향해 주변 사람들은 “도대체 두 가지를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집안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슈퍼우먼이 이 시대의 현모양처처럼 이야기 되기도 한다. 하지만 슈퍼우먼은 잘못 되었다. ‘엄마’에게는 퇴근도 없고, 휴가도, 월급도 없다. 슈퍼우먼의 결과는 그저 늙고 병드는 것뿐이었다.


늙고 병들면서까지 자녀를 키우는 보람은 있는가 나는 반문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딸들이 무난하게 잘 컸다고 생각해서 괜찮다”라고 말하는 김영희씨. 만약 엄마의 노동, 주부의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경력이 될 수 있다면 그녀는 대단한 경력직이 아닐까? 그렇다면 본인의 연봉이 어느 정도나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소박하게 연봉 3-4천을 불렀다. 어차피 못 받는 금액이라고 부른 것이 겨우 그 정도 수준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전민교가 아직도 양치를 안 해서 그녀는 또 양치하라고 소리쳤다.


그래도 이 놈이 웃는 것을 보면 이 고생을 감당 할 만 합니다.

“에이 난 그래도 이거는 금액으로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해” 김영희씨는 전씨 집안의 CEO다. ‘엄마’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동반하는 전일제 직업이다. 주 5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도우미의 비용만 해도 215만원 이라고 한다. 이 기준은 20일 근무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기준이다. 물론 이 경우에 일상적으로 아이를 챙기거나, 가족의 건강상태, 공과금 챙기기 등의 정신 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다. 최저시급으로만 급여를 산정하는 것은 정말 옳지 않지만 내년에는 최저 시급이 오를 것이니 이것보다 더 높은 금액이 월급으로 책정될 것이다.


퇴사하는 것처럼 요즘 김영희씨는 졸혼을 하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고는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 그녀는 여유만 있다면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이 먹어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나는 뭔가 배우는 걸 좋아 하잖아.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이라든지, 반찬가게를 하든지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지고 싶어”


엄마의 노동이 경력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경력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월급은 받지 못하지만 훌륭하게 두 딸을 키워내고,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영희씨. 우리 엄마를 응원한다. 엄마의 노동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도 인정 받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란다.




에디터 전지인

사진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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