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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10. 2021

나의 퀘렌시아

삶이 즐겁지 않을 때 향하던 곳, 이태원

내가 사랑하는 풍경

2017년 여름, 프랑스에서의 교환학기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낭만은 끝났다. 그 뒤로는 줄곧 대학교를 졸업하고 앞으로 어떻게 생존할지 고민하는 시간들이었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서둘러서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했다. 어서 직장인이 되어서 최소한 내 밥값은 하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4년 동안 즐겁게 다녀왔던 대학교를 마치고 나니 종이 한 장과 손에 잡힐 듯 말 듯 희미해진 추억이 한 움큼 남았다.


하지만 정작 원하던 대로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왠지 모를 씁쓸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루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었다. 나중에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해서 그랬다는 것을. 우리가 이러려고 12년을 고생해가며 준비해서 대학에 가고 졸업했나 싶어서, 허탈함에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삶이 즐겁지 않을 때,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을 때면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이태원으로 향했다. 서울이지만 왠지 낯선 나라의 도시인 것 같은 동네. 그곳에 가면 다시 외국에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그곳은 회색 빛깔이 가득한 서울 한복판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 희한한 동네였다. 고개를 들어보면 낮은 산이 안정감 있게 자리 잡고 있고, 키 작은 건물들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길 위에 서있는 가로수조차 왠지 이국적인 느낌. 골목마다 자리한 다국적 레스토랑은 다시 여행 온 것처럼 내 마음을 설레게 해 주었다. 


나는 한적하고 초록 나무가 많은 녹사평 근처에 가서 낮부터 테라스에 앉아서 맥주를 한 잔씩 하고는 했다. 그러면 늘 교과서 같이 바르게 살아왔던 내가 최고의 한량이라도 된 것 마냥 신이 났다. 괴로웠던 것들을 잠시 동안이나마 잊고 행복할 수 있는 시간. 유럽에서 배워온 이 나쁜 버릇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일탈이었다.


독립하면서부터 시작된 떠돌이 생활 중에 나는 수십 번 이사를 다니고 여러 동네에서 살았다. 어릴 때 나고 자란 도시도 고향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떠나면 그만인 동네일 뿐이었다. 이번 집의 계약이 만료되면 또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중에 자연스럽게 나만의 피난처를 떠올리게 되었다. 


자유스럽고 루즈한 분위기, 아름다운 풍경, 골목마다 저마다 자부심을 갖고 버티고 있는 가게들, 걸어서 전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안식처가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나의 고향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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