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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11. 2021

01. 첫인상

어렴풋이, 하지만 분명한

겨울이었다. 그때의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할 때마다 선생님들로부터 '정말 착한데 공부만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는 겨울 어느 날, 다 같이 버스를 타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들을 구경하러 가게 되었다. 


아마 선생님들은 어쩌면 앞으로 생겨날 인생의 여러 사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지도 모르는 수능시험을 앞둔 순수한 학생들을 많이 걱정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연말에 있을 시험을 앞두고 뭔가 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서울에서 유명한 대학이라는 대학은 다 둘러보았다. 고려대학교의 교내 게시판에 마르크스 스터디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었던 것과 뭔가 세련되어 보였던 연세대학교와 교정이 예뻐서 기념사진을 찍었던 경희대학교, 그리고 걸어 다니기 힘들었던 성균관대학교의 언덕이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간다면 절대로 평지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었다. 


대학교를 열심히 순회하다가 우리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내려서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렸던 곳은 이태원역 근처였고 돌이켜보면 그때가 생애 최초 이태원 방문이었다. 당장 하루 전 날에도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마당에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 된 그 날의 기억이 제대로일 리가 없다. 하지만 유독 그 날의 인상은 아직까지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고등학생의 내가 본 이태원은 의외로 아무것도 없고 낡은 건물이 많은 시시한 동네였다. '이태원이 그렇게 유명하다더니 생각보다 별 것 없네?'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나이 때의 사람들에게 별로 허락되는 것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허락된 시간 동안 친구들과 이태원역부터 녹사평까지 그냥 걸어 다녔다. 한낮의 이태원은 조용하고 심심했다. 지금은 그 심심함을 사랑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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