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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12. 2021

02. 두 번째

이방인으로의 삶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지루했던 입시 생활에도 끝은 있었다.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수능시험은 별 것 아닌 일처럼 지나갔다.


수능을 둘러싼 무성한 이야기들 중에 1점 차이로 수능 등급이 달라져 버렸다는 아주 무서운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런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과연 누구에게 일어나는 것인가 했었다. 그런데 성적표가 나온 날, 바로 내가 그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아주 잠깐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찾아오는 것일까 좌절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원망을 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빨리 어떻게 해결할지 방법을 고민해보자고 하는 꽤나 현실적인 감각을 가진 학생이었으므로 빠르게 대안을 모색하였다. 모든 것이 내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길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고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과 밤새가며 편지와 메시지 나누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흥미에 맞는 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지역학과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리고 3년 뒤 이제 떠날 때가 되었으니 유럽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라는 그동안 프랑스어를 배웠으니 프랑스로 정했다. 별로 거창하고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그 땅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마치 내가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았고, 사람이 으레 자기 살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느낌의 감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릴 적부터 오래도록 막연히 동경해왔던 유럽으로의 교환학생을 준비하였다. 외국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전에는 공부도 힘들었고 미래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휴학을 할까 고민을 할 정도로 기운 빠져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떠날 마음을 먹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짓말처럼 모든 걱정과 고민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당시 내가 구사하던 프랑스어라면 프랑스식 알파벳 발음도 할 줄 모르다가 몇 개월 만에 벼락치기를 해서 겨우 생존 프랑스어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겁도 없이 학부 수업에 꾸겨 들어갔다.


그 낯선 땅에서 나는 외국어를 하는 이방인이 되었다. 이방인에게 일상은 늘 새로운 과제의 연속이었다. 나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등바등하기도 하고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매달리기도 하며 영국처럼 날씨가 자주 오락가락했던 노르망디의 한 편에서 여름과 겨울을 보냈다.


1년 남짓 하는 시간 동안 프랑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놀면서 교환학기를 보냈다. 알아 듣지도 못하는 전공수업에 들어가서 기어코 학점을 따내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조금 할 만하게 되었을 때, 더 오래 지내고 싶었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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