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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Oct 10. 2019

'힙'의 공간, 아조 스튜디오

힙지로를 더욱 힙하게,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편집샵

(2019년 5월 방문)


흔히 '힙지로'라고 불리는 을지로에 문 연지 얼마 안 된 편집샵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패잘알'과 함께 다니다 보면 이렇게 얻어걸리는 공간도 있는 법. 매거진 소재 생각에 얼른 따라나섰다.


좁은 골목을 꼬불꼬불 따라가다가 거대하고 하얀 문을 만났다. 창문이 없는 건물인 데다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상상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들어갔다가 이상한(?) 곳과 마주칠까 봐 지도 앱을 두세 번 확인한 뒤에야 문을 슬쩍, 열어보았다.


아조스튜디오 입구 ⓒ 우주 OOZOO


문을 열자마자 순간적으로 '공사가 덜 끝났나?' 싶었다. 공간 오픈 후 한 달이 안된 시점이어서 조금 어수선했다. 방문했던 시간대에 매장 정리를 하고 계셔서 거대한 그림보다는 계산대와 에코백이 먼저 눈에 띄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공간에 대해 설명해주셔서 낯섦이 가셨다. 1, 2층에는 아조스튜디오의 쇼룸이, 3층은 사무실이, 4층에는 바가 있다고 했다. 지하에는 햇빛서점이라는, 국내 최초의 LGBTQ 서점이 있었다. 


1층 쇼룸 ⓒ 우주 OOZOO


좁은 계단으로 내려가니 알차게 구성해놓은 햇빛서점이 있었다.

'빛이 들지 않는 지하여서 '햇빛'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LGBTQ에 대한 은유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확실히 다른 서점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책들이 많았다. 


햇빛서점 ⓒ 우주 OOZOO


몇 년 전부터 을지로는 날 것의 느낌, 오래된 분위기를 살리는 공간이 화제가 되었다. 덕분에 '힙지로'라는 별명도 생겼을 만큼 ''이 없으면 화제가 되지도, 사람을 끌어모으지도 못한다.


2층에 올라가자마자 '이제 이 정도가 아니면 을지로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뜯어낸 흔적, 깨지고 망가진 부분까지 모두 그대로 남아있었다. 쇼룸이라기엔 비어있는 부분이 훨씬 많았고, 역설적이게도 옷보다는 다른 쪽에 더 관심이 갔다. 

 

우선 특이한 오브제가 눈에 띄었다. 맨 꼭대기 중앙에 눈을 감은 부처상이 있어서 제단에 바쳐진 귀한 물건같이 보였다. 서양 문화권에서 살던 사람이 갑자기 동양 문화에 심취해 하나둘씩 모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동양적이기도, 혹은 서양적이기도 했다. 


2층 쇼룸 ⓒ 우주 OOZOO


힙이라는 개념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바꾼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흑 아니면 백'처럼 '자, 한 번 너네끼리 잘 어울려봐!' 하고 양 극단에 있는 것들을 던져본 것 같기도 했다. 공간 자체는 아주 오랫동안 방치된 것처럼 허름했지만 옷은 무척 세련됐고 당연히 빳빳한 새 옷이었다.


아주 낡은 것과 가장 최신의 물건이 섞여 있는 곳. 오래된 골목에 모여드는 젊은 사람들. 기획자가 이런 이질적인 분위기를 원했다면 120% 성공이다. 


4층 바, After jerk off  ⓒ 우주 OOZOO


몹시 좁고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강렬한 인센스 향과 함께 어리둥절한 풍경이 펼쳐졌다. 카페와 바를 아우르는 'After jerk off'였다.


오른쪽에는 강렬한 조명이, 그 밑에는 헤엄치는 물고기가, 그리고 사방에 오리엔탈풍 물건이 가득했다. 새 것과 오래된 것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2층과 마찬가지로 동서양이 혼합된 느낌이어서 홍콩이 떠올랐다.

(아마도) 조명을 잘 활용하는 곳이라 특유의 분위기를 만끽하려면 해가 완전히 지고, 골목이 밤에 잠겼을 때 방문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4층 바, After jerk off  ⓒ 우주 OOZOO


아조스튜디오는 '코가 아팠던 곳'으로 기억된다. 애프터 저크 오프에서 맡은 인센스 냄새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방문 전 읽었던 글에서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했는데 무척 공감했다.



그동안 공간 몇 군데를 둘러보니 공간의 인상을 결정하는데 향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과 달리 현실(오프라인), 특히 공간에서는 시각이나 청각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몸 전체를 쓰는 일에는 체험(體驗)을 쓰듯, 다양한 감각을 충족시키는 경험을 주는 것이 사람을 끄는 공간의 비결일 테다.


지나치면 영영 모를 공간이 시내 곳곳에 있어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나는 도장깨기를 하고 있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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