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클럽 스핀오프 <아무튼 X 텍스트 (인기가요) 클럽> 기획 노트
(2021년 4월 29일)
서효인 시인님과 함께 한 90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유희경 시인님 덕을 많이 본다. 시인님께 아무튼 시리즈랑 콜라보하고 싶다고, 꼭 만나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정말 제철소 김태형 대표님을 연결해주셨다. 유희경 시인님은 역시 최고야.
아무튼 시리즈는 출판사 세 곳 - 제철소, 위고, 코난북스 - 가 함께 만드는 에세이 시리즈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깊이 들어가 보는 시리즈인데 대개 사소한 취향을 다룬다. 관심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은 모두 글감이 된다. 작가는 해당 분야에 정통한 '덕후'다. 학위가 있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덕력을 누가 이기겠나. 좋아하는 마음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시리즈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는 텍스트클럽은, 늘 만들던 이벤트보다 좀 더 가볍고 쉬웠으면 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아무튼 떠들고 아무튼 웃다가 가는 그런 북토크. 텍스트클럽은 '텍스트를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프로그램이므로, 언제나 가장 독특한 포맷과 기획을 제안하고 싶다.
아무튼 텍스트클럽 시리즈는 창작자와 마주 앉아 진짜로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아무튼, 인기가요>는 그 자체로도 재밌는 책이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약간의 수다를 곁들이며 책에 나온 노래를 같이 듣는 정도로도 만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왕 유료 티켓을 구매한다면, 더 좋은 혜택과 더 나은 경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생각의 뿌리에 물을 주었다.
1. 취향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하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나 청자이며 화자이다.
2. 이 책을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눈다면: 듣는 노래, 부르는 노래, 덕통사고.
3. 내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 가수 하나의 개별성/고유성으로부터 '가요'와 '음악'이 가지는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형태를 만들자.
사전 공개했던 대화 주제도 '듣는 노래', '부르는 노래', '영업하고 싶은 노래'로 잡았다. 시인님과 텍스트클러버가 이야기를 하면 필연적으로 엄청난 추천곡들이 쏟아질 텐데, 그것들도 기념품처럼 품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이든 아니든.
그래서 '함께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미리 QR코드를 만들어두고 텍스트클러버는 퇴장할 때 찍어가면 끝. 시인님이 책에 실어둔 노래 50여 곡은 미리 넣어뒀고, 행사 내내 텍스트클러버의 노래를 찾아 추가했다. 그렇게 모인 노래가 100여 곡 (1인 5역쯤 소화한 우리 매니저... 정말 대단해...).
시인님은 타고난 진행자라, 내가 러프하게 잡아둔 대본을 아주 스무스하게 소화하셨다 (행사 전에는 떨린다고 하시더니... 다 거짓말이었어...). 시인님의 입담을 믿는 한편, 이야기를 많이 나눌수록 더 좋으니까 리워드도 걸었다. 메인 세션에 참여하기만 하면, 무조건 아무튼 시리즈 중 1권을 랜덤으로 증정. 기획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퍼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말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번에는 공간도 실험적이었다. 무대를 쓰지 않고 모두 플로어에 내려 둥글게 둥글게 앉았다. 창작자가 모더레이터이며 그 자신이 참여자가 되는 구성. 플레이리스트도 그 자체로 엄청난 실험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대책이 없는데 자꾸 실험을 해본다. 매번 북토크인데 매번 어려운 이유는 매번 손이 많이 가도록 구성하기 때문일까... 쉬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해놓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프로그램을 만든 것 같다. 사람들은 창작자와 마주할 기회도 없는데, 대화까지 하라고 하니까 어려웠겠지.
사실은 너무 앞선 기획인 건지 걱정을 많이 했다. 유희경 시인님도 내 기획은 대부분 대중보다 열 발쯤 앞서 있다고 하셔서 (...) 기획자와 관객/소비자 사이의 적정한 거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번에는 좋아하는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모여 있는 순간, 걱정과 불안이 조금 풀린 것 같기도 하다. 잘 참여한 분들에게 감사하다. 괜히 걱정했다, 싶을 정도로 '대화'가 되어서 행사 중간부터는 긴장이 탁 풀렸다. 모두 즐거웠기를.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얻은 것이 있다: 유쾌함을 잃지 않기. 그때그때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지키기.
최고의 매니저, 파란 덕분에 텍스트클럽 관련 일을 나누는 경험도 해봤다. 파란이 없었더라면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사하게 수월하게 프로그램을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정말 내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방향을 잡으면 실행해주는 파트너가 있다. 이것이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 믿는 구석이 생기니 마음이 홀가분해져 생각에 여유가 생기더라. 게다가 이토록 섬세하고 프로페셔널한 운영은 파란이 아니면 할 수 없었을 것.
텍스트클럽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 좋아하는 무언가를 나누는 일. 네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네가 좋아하게 되는 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주는 일.
'좋아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가장 귀한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기꺼운 마음과 제일 친한 친구이니까, 두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면 나와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과 연민과 공감에 다다르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좋은 마음이구나, 좋아하는 마음은.
+ 멀리서 보러 와 준 친구와 즐거움 가득 안고 간 친구와 기획 인간으로 무한 공감을 퍼부어준 친구 그리고 거대한 스펀지에게 가장 깨끗한 햇빛을 주는 친구에게 특별한 감사를.
+ 올해 #아무튼 시리즈와 함께 만드는 텍스트클럽은 12월까지 이어진다. 매달 네 번째 목요일, 19시 30분. 공지는 공공그라운드 인스타그램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