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 05 <질문의 예술> 기획 후기 노트
(2021년 4월 8일)
콘텐츠는 명확하고 마음은 어지러웠던 행사였다. 키워드를 뽑고, 주제를 가려내고, 텍스트를 '행사'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로 변형해내는 일. 지난 해 내내 했던 일이고, 행사 구성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던 터라 크게 어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텍스트의 유형에 따라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배웠다.
올해 텍스트클럽은 주제적으로 시즌제를 적용해보기로 했다. 원래는 시즌 패키지 티켓도 따로 팔고, 굿즈도 제작해서 시즌마다 다른 굿즈를 가져갈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했는데 겸직을 하면서 진행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첫 시즌은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나는 격변하는 시대,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어떤 부침들, 불편한 적응에 궁금증을 품었다. 코로나19 이후로 자주 보이는 단어 - 변화, 대응, 대처, 변모, 변용, 처리, 적응 - 에 정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인지. '변화'라는 단어의 반대에 있는 것, 언제나 남아 있는 것이 궁금했다. 뉴-노멀을 이야기하는 시대, 늘-노멀인 것도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들.
그래서 변화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 지키고 싶은 것,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지 찾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이번 시즌 1의 키워드 '변화'는 그렇게 찾은 단어다.
김옥영 작가님의 <다큐의 기술>은 유 시인님께서 추천해주셔서 읽게 되었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법에 관한 실용서임에도 삶에 대해 본질적으로 던져볼 법한 질문이 가득한 책이었다.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에 관한, 말하자면 '질문하는 법'을 다루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제작법을 담은 책이지만 자주 삶에 관한 에세이로 읽혔다. 나의 일과 삶에도 많이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동안 나를 돌아보며 질문하고 싶은 사람, 나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 무언가를 창작하거나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었다. 특히 0에서 1을 만들어내는(=기획하는) 창작자라면 기획의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몇 가지 구절을 동료에게 읽어줬더니 명상과도 닿아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기획자로서 느끼는 불안을 달랠 수 있었다. 맥락에 따라 유연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건 이 책이 얼마나 본질에 닿아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 전체에 밑줄을 그어두었지만, 조금 더 아끼는 문장
(p.83) 자신이 어떤 다큐멘터리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외부적 규정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으며, 그 의지 앞에 놓인 것은 아무런 경계가 없는 허허벌판이다. 이 허허벌판을 자유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가 가능하다. 그러나 자유는 본질적으로 불안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앞선 사람들의 작업 궤도를 따라가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편이 훨씬 안전해 보이니까. 그러나 그것은 사실일까? 그것은 결국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p.86) 우리가 만일 실패했다면, 그것은 규칙을 따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작품의 질서를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p.118)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완전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를 남들과 다르게 비틀어 새로운 질문으로 나타나게 하는 능력일 것이다.
(p.143) 나 스스로가 출발하는 지점을 알고 내가 가야할 목표로서의 지점을 설정할 때, 길은 비로소 방황을 멈추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삶에 대한 은유이면서 동시에 모든 프로젝트의 '기획'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p.144) 기획은 가장 먼저 자신을 위한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을 위해 수립한 그 기획이야말로 타자에게 내놓기에도 가장 적합한 것이 된다.
(p.160) "당신은 왜 이것을 찍으려 하는가?"는 대상과 당신이 어떤 물리적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질문이기보다 '당신에게 이것이 왜 중요한가' '당신에게 이것은 얼마나 절실한가'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김옥영 작가님의 첫 직업은 시인이다. 시만 쓰고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작가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40년의 업이 되었다. 시인은 '다르게 보는 사람'이니까,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변모도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떤 현상을 나만의 관점으로 다르게 보는 사람이라니. 참 멋진 업이다.
기획 미팅 때 직접 만나 뵌 작가님은 따스하고 유쾌하면서도 단호한 날카로움을 갖고 계셨다. 낯선 단어의 조합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분. 워낙 말씀을 잘하셔서 행사가 100분 가까이 진행되었는데도 객석의 집중력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텍스트클러버의 눈빛, 받아 적는 손짓, 끄덕이는 몸짓으로 우리가 지금 이 곳에 함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느꼈다. 가장 생생했던 것은 다음 세 가지: 많은 사람이 몰입할 때의 에너지, 웃음을 나눌 때의 개운함, 질문에 대한 질문과 질문에 대한 생각이 주는 깨달음.
온라인을 통해 일하고 만나는 요즘, 오프라인의 연결감이나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생동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한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채워가는 일에 대하여, '분위기'를 쌓아가는 일에 대하여 내가 가진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다시금 알 수 있었다.
행사 중에 받아 적은 말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어떤 일을 계속한다, 간직한다의 근본은 매혹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어서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면 좋겠다'는 자기상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내가 어떤 사람일 것인가를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도 나오죠, 우리는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외부 목적이 아니라 내 존재에 대한 선택이죠."
"질문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냐. 질문을 발견해야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멋지게 하냐가 아니고, 멋진 질문은 없고 진짜 질문만 있는 것입니다. 이건 의심하는 훈련이 필요해요. 모순을 간파하는 논리적 훈련. 한쪽으로 근거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에 대한 의심. 신념으로 확신을 가지면 안 되고 근거가 있어야 반박할 수 있으니까요."
텍스트클럽은 만들 때마다 늘 힘들고 늘 어려운데 늘 재밌다. 행사를 준비하는 근 한 달 동안 양가감정에 대한 마음을 많이 고민했다. 내가 이 일을 왜 한다고 했지. 왜 계속 붙잡고 있는 거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이유를 찾아보면 결국 이 행사가 나의 많은 자아를, 어쩌면 거의 전부의 면면을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결론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난 왜 하필 텍스트클럽이라는 행사에 이렇게까지 열정을 쏟는 걸까. 이게 아니면 안 될까. 이런 생각으로 다시 이어지곤 했고 그때마다 또렷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행사가 끝난 뒤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은 마음, 몸을 가진 존재가 서로를 존재 그 자체로 대면할 때의 느낌, 오프라인에서만 읽어낼 수 있는 분위기. 그런 것들이 텍스트클럽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구나. 나는 좋아하는 것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속 어떤 지점에서 '만난다'는 감각을 좋아하는구나. 작가님 표현을 빌리면 나는 이런 것들에 매혹되어 있구나.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데까지 잘, 기꺼이 즐겁게 만들어봐야지. 오늘 밤은 이렇게 매듭 하나를 지었다."
기획 미팅 때 작가님이 하신 말씀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질문'과 '발견'이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심하는 능력이고, 의심하는 능력에서 질문이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이 어딘가에 이르렀을 때 발견이 되고, 나의 자의적 발견을 타인에게 얼마나 절실하게 가닿게 할 것인지가 그다음 단계라는 말씀.
그렇다면 나도 계속해서 질문해야겠다.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싶을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전하고 싶은 이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될까. 나만을 위한 기획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획은 어떤 것들을 담고 있어야 할까.
매혹된 것에 애정을 담는 일, 꾸준히 애정을 지켜가는 일. 시즌 1이 끝날 때까지 계속 질문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