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 06 <처음, 김민정> 기획 노트
(2021년 5월 13일)
김민정 시인님 모시고 여섯 번째 #텍스트클럽.
작년에 난다 출판사와 텍스트클럽을 연이어 만들면서 인사드렸던 김민정 시인님. 이번에는 대표님이 아니라 시인으로, 무대에 모실 수 있어서 기뻤다.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가 문학동네 포에지 시리즈로 20년 만에 복간되었다. 문학동네 포에지는 절판된 시집을 복원하는 시리즈다. 편집자이면서 시인인 사람은 본인의 옛 시집을 새롭게 엮어 다시 세상에 내어놓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시작점을 다시금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이번 텍스트클럽은 '첫' 그리고 '처음'을 궁금해하며 기획했다. 시즌 1의 키워드 '변화'와도 잘 연결되어 더없이 기대되었다.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 변화를 거쳐 도달한 지금에서 바라보는 처음을 이야기하는 시간.
이 시집은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처음 읽어봤다. 무섭고 아팠다. 처음에는 시에 쓰인 감각이 몹시 선명해서 몸이 아픈 느낌이었는데, 차근차근 읽다 보니 내가 나라서 아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내가 나이기 때문에 좋고 자랑스러운 점이 있는 만큼, 내가 나이기 때문에 갖는 한계에 깊이 좌절해본 경험도 있을 테니까.
기획안을 준비하며 인터뷰나 비평 칼럼도 몇 개 읽어보았는데, 어느 비평에 쓰인 '시인이 무당 같다'는 문장에 깊이 공감했다. 무당이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존재의 고통에 마음에 깊이 닿는 일이라면 시인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시집을 읽으며 '나'를 이루는 여러 캐릭터를, 여러 면면을 마주할 때 필연적으로 느껴지는 고통스러움이 있었다. 상담을 하든 마음챙김 명상을 하든,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봐야 할 때의 괴로움이나 징그러움이 계속 떠올랐다. 그럼에도 마주하려는 이의 마음은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처음'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낯설고 창피하다. 나의 어리숙함을 마주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짚어볼 때마다 변한 나를, 어쩌면 변하지 않은 나를 마주해야 하니까.
김민정 시인님의 여러 말씀 중에 '이제야 나를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맴돈다. 나를 가지치기하려는 사람은 다 죽여버리라던 은사님의 말씀도, 자연스럽게 '몸'이 알아차릴 때까지 차오르는 시간을 견디라는 이야기도 깊이 남았다. (자세한 행사 리뷰는 공공그라운드 매거진에서 확인!)
수많은 나를 탐구하는 이야기로 이해한 시집. 가장 처음의 시집. 시집에서도 이야깃거리를 발견하고,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마음과 지금을 엮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텍스트클럽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작가가 독자에게 줄 선물을 직접 준비한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을 하기로 결정하고선 텍스트클러버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내내 고민하셨다는 김민정 시인님.
사연 이벤트에 당첨된 분들 선물 말고도 모든 텍스트클러버를 위해 투명한 마음처럼 고운 '처음' 편지, 넉넉한 복주머니, 따끈하고 말랑한 떡을 안겨주셨다. 웃음과 아하와 감동은 물론이고, 무엇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를 몸으로 알게 해주셨다. 자연스럽게.
시인님께서 늘 장미를 가까이 두고 예뻐하시니까, 텍스트클러버들도 이런저런 장미를 한 아름 들고 오셨더라. 예쁜 마음이 넘쳐났던 파랑새극장. 무대에 올리려던 분홍 장미와 민정 시인님 댁 옥상에 피었던 흰 장미를 머리맡에 두었다. 장미향 그득한 밤.
김민정 시인은 개정판 시인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이 밖에 나는 더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나의 거의 모든 조각을 담은 텍스트클럽, 이 밖의 나는 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