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잘 살아 있을 것

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 07 <우리의 세계> 기획 노트

by 우주 oozoo

(2021년 6월 4일)


이번 텍스트클럽은 통산 여덟 번째.

기획자로서, 제1의 관객으로서 기념할만한 일이 많았고, 따뜻했고, 떨렸지만 기분이 좋았다.


1월에 읽고 반해버린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어린이는 어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차분하게 전달하는 책이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은 제법 갖춘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뜨끔한 부분이나 생각이 전환되는 지점을 많이 발견했다.



284EF00D-6395-452C-9362-67EBA85E272F_1_105_c.jpeg 화기애애 했던 일곱 번째 텍스트클럽 Ⓒ 우주 OOZOO



'어른이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에 대한 물음에 다양한 일화로 차분히 답하는 책. 책을 곱씹으며 가장 좋았던 포인트는 ‘어린이’와 ‘어른’의 자리에 ‘사람’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에 관한 이야기로 변신한다는 점이었다.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를 이해해보려는 노력, 정중한 태도, 그리고 마음에 관한 이야기.


관계 맺기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텍스트클럽에 꼭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섭외 머신 유희경 시인님과 일정 조정에 공들여주신 사계절 이진 팀장님과 흔쾌히 수락해주신 김소영 작가님 덕분에 성사된 귀한 #텍스트클럽.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만들어내어 몹시 피곤했지만 나와 너와 우리가 만드는 세계는 놓을 수 없으니까,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D23DC5C7-A1F6-46FD-B9FE-B7C80998E9B6_1_105_c.jpeg 제일 좋아하는 구도 Ⓒ 우주 OOZOO



이번 행사는 기획팀끼리 'A type'이라고 부르는 텍스트클럽의 한 시즌이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2021년에 처음으로 시즌제를 도입해보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런칭이 6개월 정도 밀린 텍스트클럽이었기에 지구를 뒤흔든 이 변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특별히 “변화”라는 키워드를 꼽았고, 그로부터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팬데믹 이후로 우리는 너무 많은, 혹은 너무 빠른 변화를 거쳐왔다. '언제쯤...'이라는 무기력에 익숙해졌고, 상상할 수도 없던 삶의 모양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발견해낸 키워드였다. 언론에서는 매일 우리에게 닥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다루었지만, 엄청난 변화를 겪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연결되기를 바랐고,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했다. 세상에 변화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면 나는 그 이면에 있는 것들, 그러니까 '변하지 않는 것들'에 주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텍스트클럽은 진화와 발전 속에 담긴 본질, 본질을 발견하기 위한 질문, 변화 속에서도 지켜가고 싶은 것에 주목합니다. 김옥영 다큐멘터리스트, 김민정 시인, 김소영 작가와 함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의 가치를 조명합니다.
- 텍스트클럽 시즌 1 마케팅 문구 중에서 발췌


평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태도로 살고 있으니 '이면을 봐야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발견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보니 세 개의 행사를 서로 다른 장르의 텍스트로 다 풀어냈다. 무대에 여성 연사를 많이 올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함께 하게 된 분들이 모두 여성 창작자였다. 기획도 잘했고 운도 좋았네. 뿌듯하다.


05 #질문의예술: 본질을 발견하기 위한 질문
- 김옥영 <다큐의 기술> (예술/대중문화)
06 #처음김민정: 진화와 발전 속에 담긴 본질
- 김민정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현대시)
07 #우리의세계: 변화 속에서도 지켜가고 싶은 것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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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어울리는 꽃을 사두는 것도 시그니처 포인트. 주로 꽃병을 들고 가서 바로 담아온다 Ⓒ 우주 OOZOO



기념하고 기억하고 싶은 포인트도 메모해두었다. 비하인드 스토리이기도 하니까 조금 남겨둔다.


텍스트클러버들이 기대를 잔뜩 끌어안고 입장하는 행사는 조금 다르다. 창작자, 관객 구분 없이 서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분위기는 또 처음 봤네.


작가님과 건물의 인연도 흥미로운 점인데 미처 말하지 못해 아쉽다. 공공일호가 샘터사옥이었을무렵 이곳에서 근무를 하셨다고 한다. 작가님의 한때와 나의 시간이 이 건물에서 겹쳐 흐르는 게 비할 데 없이 신기하다. (이런 게 인연인가?!)


오늘 나리님과 미디어오리의 손길이 닿은 온라인 스트리밍 시스템도 데뷔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파랑새극장 유료 스트리밍… 정---말 역사적인 날이다. 덕분에 칭다오에 계시는 텍스트클러버와도 연결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놀랍도록 좋은 세상이다.


준비하는 동안에는 고단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만반의 준비를 한 느낌이 들었다. 수월했고 즐거웠다. 무척 무척 무척. 집에 돌아와 간단히 회고를 적어보니 조명, 음향, 기타 오퍼가 모두 완벽했다. 이게 다 드림팀 덕분이다. 케일만큼 꼼꼼한 음향감독님을 본 적이 없고, 파란만큼 구멍을 촘촘히 채우는 오퍼레이터는 다시없을 것이며, 페어만큼 멀티태스킹이 잘 되는 만능인은 어디서도 만날 수 없으니까. 유 시인님과는 원래도 손발이 잘 맞았지만 이제는 별 말 안 해도 쿵짝쿵짝에 강약 조절까지 할 수 있다. 세상에 나 원 참 참내 이런 팀이 어딨나 싶은데 내 옆에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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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멋있었던 유희경 시인님. 행사/리허설 중 덕질 모먼트 Ⓒ 우주 OOZOO



늦은 리뷰를 쓰는 중에도 파랑새극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잔잔한 수줍음, 와르르 쏟아지던 웃음, 훈훈하고 따스한 마음. 모든 것이 순하게 흘러 다니던 시간. 작가님의 말씀 중에서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것도 남겨둔다. 예쁜 마음은 언제든지 좋으니까.


어린이를 계속 어려워하는 마음이 좋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어른이 되었을 때 어린 시절의 추억 중에서 어떤 기억을 남길지 결정할 수 있더라고요. 좋은 순간, 별로인 순간이 있을 텐데 어떤 것에 중심을 둘 지, 그 결정을 내가 내릴 수 있고, 기억이 아름답게 보정될 수 있어요.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횡단보도, 엘리베이터, 마트에도 어린이가 있어요. 나와 직접 연관을 맺고 있지 않다고 해서 ‘내 주변에는 어린이가 없어서 잘 몰라’라고 얘기하는 게 어린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 돼요.
내가 만난, 나에게 힘을 주는 착하고 강한 사람들의 표정과 말을 구구단 외우듯 외우자고 말씀드려요. 절망의 순간에 스위치를 내리고 희망의 순간을 떠올리기 위해서요.



792D80F2-9EB4-419C-AB62-83145F232DF4_1_105_c.jpeg 내내 이렇게 귀엽고 훈훈했다구요 Ⓒ 우주 OOZOO



투잡을 시작하고 3개월이 흘렀을 때 만든 행사. 멘탈이 나가지 않게 개인적으로 애를 많이 썼다. 상담도 주기적으로 받고, 마음챙김도 잊지 않고 무시로 챙겼다.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고, 하이퍼 상태에 며칠 놓여있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사람들 덕분에 넘겼다. 힘들 때 힘들다고 얘기하지 못하면 알아봐주는 동료들이 있었고 감사하게도 도움을 구해도 된다는 믿음을 꾸준히 주었다. 결정적일 때마다 도움 구하기를 주저하는 나에게 기꺼이 손을 뻗어주었기에 이만큼 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북돋고 격려해준 동료들 덕을 많이 봤다. 투잡을 해서 동료가 두 배였던 셈인데 복은 네 배로 받은 느낌이다.


이번 #우리의세계 를 만들면서 다시금 느낀 것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기획이라는 점이었다. 흥미와 애정이 있어야 대상을 잘 이해할 수 있고, 텍스트와 창작자를 들여다볼수록 가까워지니 기획은 조금 더 뾰족해진다. 나의 관점을 담은 렌즈가 대상을 '새롭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이 포인트.


무엇보다도 내가 내 기획에 자신이 있어야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진심으로 가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태도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획자로서의 자신감, 혹은 양심, 심지어 그것이 착각이나 오만이더라도 나의 렌즈를 진심으로 힘껏, 믿는 것이 기획을 잘 풀리게 한다. 이거 정말 좋다고, 그러니까 함께 들어보자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밑천이 된다. 그리고 이 밑천은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것이 '좋은' 방향인지 계속 고민하지 않으면 금세 바닥난다. 그러니 내 삶을 우선 잘 살아야 한다. 한 시즌을 마무리하며 배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