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클럽 08 <고통이 고통에게> 기획 노트
(2021년 11월 18일)
유진목 시인님의 <거짓의 조금>과 텍스트 너머의 이야기.
책은 9월에 다 읽고 대략적인 논의도 10월에 다 마쳤는데, 거리두기 4단계 해제를 하릴없이 기다리다 11월 허리에 열었다.
나는 대체로 깊이 좋아할수록 기획을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데, 텍스트클럽을 만들면서 만나는 작가님들은 하나같이 멋져서 안 좋아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을 산처럼 쌓아두고 있다가, 막상 작가님을 마주하면 지나치게 수줍어져 나의 반갑고 설레는 마음을 전할 수가 없는 게 문제다.
위트 앤 시니컬에 앉아있다가 우연히 유진목 시인님을 마주쳤을 때에도 수줍어서 어버버 했고 집에 돌아와 아쉬움에 이불을 걷어참. 나한테 꼬리가 있었다면 프로펠러처럼 휙휙 돌다가 떨어져 나갔겠지.
어스름한 오후, 윅에서 시인님의 이야기를 듣는 건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오는 일 같았다. 옷장 문을 열고 나니아로 가는 얘기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아는 것'과 '알게 되는 것'을 탁, 발견할 때마다 더 오래오래 듣고 싶었다.
‘슬퍼 뒤지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이렇게 압도적인 텍스트를 내가 다룰 수 있을까, 싶어 겁이 났다. 퇴근길 카페에서 단숨에 읽고선 골목길을 돌아 길게 걸었고, 며칠은 펼쳐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알아봐야지, 싶어 아무 페이지나 다시 펼쳐 읽고 읽고 또 읽으면 그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게 있더라. 솔직함, 용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조각들. 이야기를 계속, 더 듣고 싶은 마음, 보드라움과 웃음을 또 발견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번 텍스트클럽을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이 처음 나에게 왔을 때, 책을 곱씹으며 아이디어를 짤 때, 기획을 실재하는 일로 만들 때 나는 계속 고통 속에 있었다. 그래서 유진목 시인님의 용기가 부러웠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 이 솔직함은 어디에서 오고, 그 고통은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 시인님을 통해, 글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 배워보고 싶었다. 그리고 괴로움 속에 있는 사람, 괴로움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이 이번 텍스트클럽에는 꼭 와주기를 바랐다. 괴로움을 말하고 나눌 수 있는 자리는 만나기 쉽지 않으니까.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는 일방적인 관계 말고, 서로 주고받으며 배우고 바꿔보는 관계 맺음을 상상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괴로움을 말하고, 이해하고, 소화하려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낼 때의 반짝임을 기대했다. 내 이야기가 상대에게 영감이 되고, 상대방은 나의 레퍼런스가 되는 과정을 함께 통과하기를 바랐다.
진목: 고통은 숨길 필요가 없다.
희경: 고통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너무 빤한 키워드를 골랐나 싶었다. 조금 더 색다르게, 더 남다르게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그렇지만 고통을 말하는 책에서 고통을 빼면 알맹이 없이 껍데기 주변만 뱅글뱅글 돌 것 같아 나름대로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따뜻하고 유쾌한 텍스트클럽’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따뜻하고 고통스러운 텍스트클럽’도 한번 열어본 셈이다. 이번에도 최선의 최선을 다했다. 후회 없이.
고통을 이야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용기 내어 말하는 모습도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로 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각자의 고통 속에서 보편을 발견해내는 장면이 아름다웠다.
이번 텍스트클럽에는 친구들이 많이 찾아주었고 자주 들러주시는 VIP 텍스트클러버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났다. 텍스트클럽은 많은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하는 일, 이 안에 꼭꼭 담은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일이라 몇 배는 더 고마웠다.
귀하디 귀한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 내 손을 꼭 잡고 전해준 온기도, 눈인사와 토닥임까지도. 행사가 끝나면 긴장이 약간 풀리면서 혼이 살짝 나가는데, 그럴 때 들어서 조금 희미한 기억이지만 사람들의 말을 주머니에 꽉꽉 채워왔다.
모아 온 조각들, 의 모음:
오늘 즐거웠어요. 정말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직접 와보니까 더 좋았어요. 좋은 기획 해줘서 고마워요.
텍스트클럽은 항상 생각해볼거리,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을 줘요. 텍스트클럽으로 제 삶이 달라지고 있다고 느껴요. 한 사람에게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주변에 영향을 주고, 그렇게 퍼져나간다면 사회가 달라지는 데에 기여하는 거예요.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좋아 뒤졌던' 11월 텍스트클럽. 모두에게 고통이라는 단어가 무겁고 아프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고통을 보낸 후에는 연약한 살아있음을 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