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클럽 09 <목정원의 관객 학교> 기획 노트
(2021년 12월 17일)
통산 열 번째, 정규 프로그램으로는 아홉 번째, 2021년의 다섯 번째, 그리고 2021년의 마지막 텍스트클럽.
텍스트클럽이라는 북토크 브랜드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창작자와 독자의 거리를 좁히는 일. 독자 혼자 읽고 끝내는 독서 말고, 책을 읽고 생긴 궁금증과 감상을 나누며 입체적인 독서를 경험하고, 궁극적으로는 삶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되도록이면 여러 텍스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싶고, 이 행사의 프로듀서로서 발견한 포인트가 다른 사람에게도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행사는 왠지 각별히 감사한 마음이 조금 더 들었다. 혼자서 90분 동안 이야기에, 노래에, 질문 답변까지 이끌어주신 목정원 작가님. 의견 조율부터 가사를 담은 팸플릿까지, 뭐든지 후루룩 만들어주시는 아침달 출판사. 다정히 안부 물어봐주시는 유희경 시인님, 마지막 텍스트클럽까지 마음 다 해준 공공그라운드 사람들까지.
골라낼 키워드가 많았던 목정원 작가님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위트 앤 시니컬에 놀러 갔다가 만났다. 전문 용어가 그득한 공연 비평서인줄 알았는데, 비평에 감상이 더해진 산문집이다.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어야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는 책.
공연예술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시간을 바탕으로 하는 ‘시간 예술’이고, 우리는 항상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있으므로 ‘시간'이라는 특성을 다루기로 했다. 파랑새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같은 시간과 장면을 나누는 것이니, 모두가 시간이 사라지고 있음을 함께 바라보고,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흐름.
더하여 이번에는 작가님의 적극적인 의견에 따라 구성도, 내용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작가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직접 가사를 쓴 노래까지 들을 수 있는 공연 같은 북토크. 텍스트클럽 최초로 가사를 담은 행사 팸플릿도 제작되었다 (아침달 출판사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문장을 워낙 아름답게 쓰시는 분이라 직접 가사를 붙인 노래들도 무척 아름다웠다. 미리 대본에 얹어주신 가사들도 생각할수록 와닿는 부분이 있었는데, 작가님의 연주와 목소리를 만나니 내게 닿는 단어들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낭독 파트에서는 일부러 BGM을 빼고 작가님 목소리로만 진행했고 참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청아한 가운데 단단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음향 감독님은 샤베트 한 숟갈을 떠먹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다시 생각해봐도 음향 감독님 덕분에 더 돋보였던 것 같다. 내내 듣던 중 가장 미친 맛 오디오. 오차 없이 깨끗한 오디오. 감동의 오디오. 진짜 신의 귀를 가진 건 아닐까? 우리 케일 감독님 최고.)
2021년을 마무리하는 행사였으니 비하인드를 좀 더 풀어본다. 텍스트클럽의 시그니처 포인트는 책과 어울리는 꽃다발. 무대에 올라가는 책은 항상 인덱스가 다닥 붙은 내 책이다. 특별히 주제를 도드라지게 한다면 무대 연출이 더해지고, 조명을 활용해 ‘텍스트클럽’ 이라는 공연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느낌을 준다. 암전 되었다가 무대가 밝아진 다음에는 꼭 낭독으로 문을 열지. 문을 닫을 때에도 역시 낭독으로.
연출에 진심인지라 이번에도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를 만들었다. 행사 전날 오후에 한 번 만들고, 당일 오전에 파란과 함께 남대문 시장을 휩쓸고 돌아와 꼬박 4시간 만든 무대. 오너먼트도 꼼꼼히 고르고, 지네전구 칭칭 감고, 유리병에 이렇게 저렇게 넣어보면서 만든 오브제들. 처음으로 꽃 도매 시장에서 라벤더 한 단과 리시안셔스 한 단을 데려왔다. 꽃을 마음껏 쓰고 푸지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야심작이었던 LED 캔들은 정말 굿 구매. 시간이 흘러감을 상징하는 소품이었는데, 불을 붙인 채로 공연을 진행할 수는 없어서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스트리밍 상에서는 잘 잡히지 않았겠지만 나름의 디테일이 묻어있었던 연출. 극장에서 직접 관람한 분들이 극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와아-‘ 하시는 말에 고생이 스르륵 녹았다.
연말이고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서 쉽게 트리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진짜다.) ‘관객 학교’라는 이름이 너무 거대하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작가님의 아늑한 방에 초대받은 것처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
사실 지나치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건 아닌지, 무대가 너무 복잡하고 조잡스러워 보일 진 않을지 걱정이 많이 됐었다. 눈으로는 예쁘지만 주제를 해치면 어떡하나 고민하기도 했는데, 남은 사진을 보니 작가님의 이야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따뜻한 분위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명의 텍스트클러버로서 작가님께서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도 기뻤다. 몸으로 감각하고 경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진짜 진짜로 알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텍스트클럽도 ‘온몸으로 텍스트를 경험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더 더 반가웠다.
관객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본다’라는 것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존재를 위한 행동인지 알 수 있었던 시간. 참여해주신 텍스트클러버 분들이 작가님의 이야기를 통해 ‘예술의 관객’과 ‘삶의 관객’이 다르지 않음을,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발견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세상에 있었던 작가님의 말 중 일부를 옮겨둔다.
“여러분이 제 노래하는 모습을 보셨는데, 지금 이 순간 노래는 사라졌잖아요. 그렇지만 아무도 안 봤으면 그 노래가 존재했는지 말할 수 없을 텐데, 여러분이 보셨으니까 그 노래가 ‘있었습니다.’ 본다는 것은 이 세계가 지나가는 중에 그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 근원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몸을 가지고 보고 있죠. 내 몸으로 아픔, 기쁨을 겪고, 다른 사람의 것도 내 몸에 또다시 반사해서 그려보면서, 따라서 행동해 보면서, 적극적으로 보고 있어서 누군가의 아픔도 공감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본다는 것의 근원은 우리가 ‘존재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며 ‘함께 몸을 가지고 살아있다’는 것. 더 많이 보고, 자꾸 아프고, 같이 나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