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클럽 10 <다정교감> 기획 노트
(2022년 1월 27일)
통산 열한 번째, 정규 행사로 열 번째 텍스트클럽. 2022 텍스트클럽을 여는 첫 행사.
2021년 마지막 텍스트클럽을 끝내고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김혼비 작가님 글이 재밌는 건 진작 알고 있었고, 예전에 읽었던 <전국축제자랑>이 진짜 진짜 재밌었기 때문에 이번 준비가 즐거웠다.
귀여운 표지나 추천사를 읽으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다정 얘기가 담겨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막상 읽기 시작하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며 눈이 번쩍번쩍 떠지더라. 사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관찰하며 얻은 귀한 발견들.
무엇보다도 다정/마음을 계속 받기만 하거나 계속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고받음’을 고루 다루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보통은 내가 받은 다정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니까. 작가님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건넨 다정은 그 사람을 알아주고, 사정을 이해해주고, 때로는 통념을 산산이 부수는 형태였고 나는 새로운 다정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다정소감>은 김혼비 작가님이 남편과 술 한잔 기울이다 정한 이름이라고 한다. "김혼비는 다정다감은 아니고, 다정소감쯤 되지."라는 말씀에서 따왔다고. 재밌게도 행사 제목인 <다정교감>은 서효인 시인님(이자 안온북스 대표님)이 기획 미팅 때 하신 말씀에서 따왔다. "독자와 교감하는 자리니까 다정교감 어때요?"
무대에 복귀한 유희경 시인님의 진행은, 정말 감탄이었다. 김혼비 작가님과 오래 알던 사이가 아니라고 하셨는데도 막역한 친구와 수다 떨듯 유난히 스무스했고 내내 유쾌했다. 각 세션의 연결도 매끄러웠고, 나름대로 정해둔 세션별 시간이 무색하게도 모든 세션이 제 자리에 딱 맞는 퍼즐처럼 꽉 맞아떨어졌다.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딱 알맞은 행사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세 번째로 소개된 사연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두의 모습이다. 작가님, 시인님, 그리고 텍스트클러버 모두 감탄하고 공명했던 순간. 가족 이야기는 꺼내기도 어렵고, 복잡한 속내를 적당히 설명하기도 어려운데 사연 보내주신 분이 밸런스를 참 잘 잡으셨다. 어린 딸의 시선으로 이혼-재혼 가정의 좋은 점을 가볍고 귀엽게 짚어주셔서 모두에게 '아하'와 감동을 주셨다.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돌발상황에 대비하거나 진행을 살피느라 내용 자체에 그다지 집중하지 못하는데, 이날은 희한하게도 마음에 여유가 조금 있어서 나도 반쯤 관객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열 번째 행사라 모든 것들이 안정적이라고 느껴졌나, 아님 모든 게 미더웠나. 마침 그 사연을 읽는 동안 잠시 관객이었다. 대본을 다듬으면서 눈으로 입으로 수십 번 읽었는데도 사연과 음악이 붙을 때 울컥, 했다. 뭉클하고 따뜻한 게 가슴께에 머물렀는데 그 느낌이 참 따스했다.
열 번째 텍스트클럽이라 개인적으로는 한 텀이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열 번의 행사라는 것은 열 번의 미팅, 열 번의 조율, 열 번의 합이 있었다는 것.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신이 나기도, 힘이 들기도 하는데 어쨌든 열 번째에 이르렀다는 것이 놀랍다.
이번을 기점으로 텍스트클럽도, 나도 조금 더 성장하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형식의 실험도 이어가지만, 내용의 실험도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행사 후에 읽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걷는 듯 천천히> 덕분에 텍스트클럽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나름의 경험을 갖고 간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다.
요즘 BI 디자인 개발을 위해 텍스트클럽을 다시 뜯어 생각해보고 있다. 텍스트클럽의 이해관계자는 세 가지 그룹으로 나뉜다. 첫 번째 그룹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여겨지는 창작자, 호스트, 독자. 두 번째 그룹은 그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과 비슷한 기획자, 파트너사. 마지막 그룹은 텍스트와 텍스트의 친구들. 이 그룹의 요소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관계가 수직 구조이거나 어느 한 부분의 교집합이 아니라, 안쪽과 바깥쪽이 구분된 세계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공존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나는 두 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으로, 1-2-3 그룹을 연결하는 사람. 그리하여 같은 세계관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사람. 그리고 1, 2, 3의 경험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고민하는 사람. 이렇게 정리해보니 어떤 점을 잘했고, 어떤 점을 보완하는 게 나을지 알게 되어 좋았다. 방법은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지만 다른 각도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계약금도 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주고 있는 디자이너 친구 덕분에 텍스트클럽의 이면을 볼 수 있었고 (고마와요 스튜디오 상쿡), 다정의 이면을 얘기했던 김혼비 작가님을 모신 전후로 일어난 일이라 모두 연결된 일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독자만 특별히 '텍스트클러버'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사실 이 모든 이해관계자가 텍스트클러버였다. 이 깨달음은 행사날 독자로 텍스트클럽을 찾아주신 오은 시인님, 김민정 시인님, 난다 출판사 편집자님 두 분 덕분에 발견했다. 무대에 올랐던 창작자였고, 함께 일했던 파트너였던 네 분. '우리도 텍스트클럽 멤버죠!'라고 말씀해주신 오은 시인님 덕분에 '그렇지, 모두 텍스트클러버구나!'하고 매우 감탄했다. (네 분은 다른 행사에도 종종 놀러 와 주셔서 큰 힘이 된다. 이날은 조금 더 다정하다고 느꼈다. 다정 대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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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님이 오셔서 생각난 것. 독자를 위한 선물은 오은 시인님을 첫 번째 텍스트클럽의 창작자로 모셨을 때 유희경 시인님이 제안해주셔서 실험 삼아 넣었던 옵션이었다. 때로는 새로운 출판사나 창작자 분들께 선물의 의미를 설명하기가 마땅찮다고 느낄 때도 있었고, 이렇게 매번 가져갈 옵션이 될 줄 몰랐는데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돌아보니 재밌다.
서른 이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변의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깨닫고 차곡차곡 쌓아두는 시간이었다. 그 전의 사랑은 언제나 모자라고, 언제나 더 갖고 싶은 것이었는데 조금 다른 시각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니 일상도 마음도 다르게 해석됐다. 그래서 김혼비 작가님의 책은 또 다른 반가움이었다.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정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내어준 에피소드와 마음의 울림을 그대로 전해준 텍스트클러버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마케팅 문구로 썼던 '다정은 존재 자체를 긍정해주는 태도, 끝의 끝까지 바라봐주는 기다림, 그리고 곁을 지켜주는 일.'이라는 문장도 김혼비 작가님의 이야기로 더 단단한 심지를 얻었다.
천천히 스며드는 다정은 언제나 좋고, 주고받은 다정은 잘 기억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밤. <다정소감>과 <다정교감> 덕분에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처음에는 나 혼자 아끼던 프로젝트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다시 찾아오고 싶은 행사로 기억되고, 함께 만들고 싶은 북토크로 여겨지는 것은, 참, 뭉클하다.
도움과 마음 그리고 약간의 운으로 굴렁굴렁 굴러가는 텍스트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