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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Feb 12. 2023

다음, 그 다음은?

국립현대미술관 <최우람 - 작은 방주> 후기

(20221217)


우리의 요즘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전시. 다녀온 지 한 달 반이나 지나서 조금 흐릿하지만 그래도 남겨본다.


전시를 잘 모르고 어렵다는 친구들에게는 조금 더 흥미로울 설치나 퍼포먼스를, 지적 탐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는 개념미술에 가까운 전시를 추천한다. 최우람 작가의 작업은 유난히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보였는데, 바이럴된 이유는 여러모로 접점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 바이럴 덕분인지 다른 현차 시리즈에 비해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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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람 작가는 리움 상설전에서 ‘쿠스토스 카붐’을 보고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전시장 한쪽에 누워 민들레 홀씨와 함께 숨 쉬던 기계 생명체인데, 100% 기계였지만 그 전시실에서 가장 생물 같았다. 아주 작은 장치부터 큰 골격까지 촘촘히 또한 아름답게 연결되어 모든 것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탐구했었던 기계와 생물 테마에서 조금 더 나아가 사회 시스템이나 방향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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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의 지푸라기 인간들은 눈으로 보면 더 힘겹다. 원탁 위에 머리(공)를 올려두고, 머리를 차지하기 위해 5분 동안 고군분투하는 인간들. 원탁 위에서는 까마귀 세 마리가 뱅글뱅글 돌며 인간들을 지켜본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시스템 속 파르르 떨리는 지푸라기 끝에서 직장인들의 애환이 느껴지는데... (눈물)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써야만 하는지, 머리를 차지하면 그다음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머리를 가진 인간이 되면 행복해지는 걸까? 애씀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어려움이 깃들지 않을까? 그럼 그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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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한가운데에 위치한 등대, 등을 돌리고 앉아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두 선장, 길 잃은 방향계. <작은 방주>는 공연처럼 서사를 가지고 구동되는 작품이라, 잔잔한 파도와 격정적인 파도를 번갈아 만나며 바다를 헤맨다. 작품 밑으로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그림자가 아름다워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보면 볼수록 역설적으로 무엇이/어디가 방주일지 더 궁금해졌다. 무엇으로부터 탈출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그건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지금 탄 그 배에서 내려야 하는 건 아닐까?


같은 배에 타고 있는 두 사람이 영원히 마주할 길 없는 항해. 닻줄이 끊어져 닻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소통은 더 어려워지고, 자기 의견과 취향에 맞는 알고리즘이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느끼는 요즘이 떠올랐다. 방향 상실의 시대에서 이 항해의 끝은 표류이거나 해결점 없는 싸움일 텐데,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더라도 방주에 타는 게 더 나은 선택일지 고민되었다. 어차피 맴돌기만 하고 닿지 못하는 거라면 차라리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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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있는 다른 작품들까지 모두, 지금 나/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원탁>과 <작은 방주>는 구동 시간이 정해져 있고, 움직여야 의미가 있으니 홈페이지에서 미리 시간대를 확인할 것. 전시 종료가 2/26이라 아직 안 봤다면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다. 시간이 되면 한 번 더 가서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펼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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