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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Sep 04. 2020

꿈같은 여행, 꿈같은 서점

아난티 남해 - 서점 '이터널 저니 Eternal Journey'

(2020년 7월 방문)


이터널 저니는 7월 휴가 때 조심히 다녀왔다. 그때도 마스크 꼭꼭 끼고 정말 조심히 다녔는데, 그때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니 마음이 좋지 않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꿈같은 여행이었다. 지금은 더더욱 돌아다니면 안 되니까, 사진으로나마 다시 가보는 것으로...


그동안 남해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몹시 기대되었다. 남해는 차가 없으면 닿기 힘든 곳이었는데 아난티 역시 그랬다. 그래서 더 고즈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카테고리 별, 큐레이션 별로 정리되어 있는 서가 ⓒ 우주 OOZOO


이 날은 비가 꽤 왔었다. 해수욕장이나 다른 관광지 가기에 별로 좋지 않은 날이어서 이곳이 좋은 선택지였다.


리조트 안에 있는 서점이라길래 대충 구색만 갖춘 곳이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더 섬세하게 기획되어 있었다. 서점과 카페, 작은 편집샵이 함께 구성된 형태로, 투숙객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까지 마음껏 머무르기 좋았다.


다양한 큐레이션 ⓒ 우주 OOZOO


큐레이션 별로 서가를 꾸며놓은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기획자가 적어도 책 목차 정도는 읽어봐야 엉뚱한 책 없이 큐레이션 할 수 있을 테니까. 마음을 요만큼이라도 쏟은 기획이 눈에 띌 때 괜히 내 마음도 더 내어주게 된다.


벽 책장을 제외한 나머지 평매대는 대부분 큐레이션이었고, 분야도 무척 다양했다. 도시의 일반 서점이 아니라 여행지의 서점이기 때문에 큐레이션 주제는 전체적으로 여행지에서 볼법한 책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예를 들어 여행 자체에 대한 이야기, 시간 내어 읽고 싶었던 신간, 생각 정리를 해볼 수 있는 문학/철학 책 같은 것들.


과학이나 실용 부문의 책도 꽤 있었는데, 이질적이지 않게 어떤 흐름에 맞춰서 서가를 구성했더라. 그래서 돈 많은 기업에서 돈으로 아무렇게나 해결한(?) 서점은 아니구나, 하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유일하게 돈으로 해결한 부분이 있다면 아트북이 꽤 많았다는 것. 수입 서적으로 채워진 아트북 섹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요새 유행하는 '갬성' 식물도 많았다 ⓒ 우주 OOZOO


아난티 남해는 리조트처럼 '온 가족의 휴양지'로도 마케팅하고 있어서 그런지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았다. 유치원생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비교적 젊은 엄마, 아빠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할머니 손을 잡고 들어서는 아가들도 있었고.


그래서 키즈 섹션을 따로 둘 수밖에 없었을 텐데 역시나 어린이 손님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밖에서만 봐서 확실치는 않지만 서점이 아니라 어린이 도서관 같이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발을 벗고, 마구 뛰어다니거나 마구 읽어댈 수 있는.


아무래도 동네 작은 서점은 아니어서 운영자가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았다. 운영자의 손길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하지만 주변 풍경과 서점 풍경이 함께 어울리는 듯한 차분한 분위기는 잘 유지되고 있었다. 서점 구경이 끝나면 편집샵이나 F&B 시설로 흘러갈 수 있도록 동선도 자연스러웠다.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잠시 머물며 읽어볼 수 있도록 곳곳에 의자도 비치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탁 트인 느낌. 의자도 곳곳에 ⓒ 우주 OOZOO


서점은 경사로를 잘 활용한 재미있는 건물에 있었다. 들어갈 때는 분명 1층이었는데, 서점 안에 카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면, 1층이 카페이고 2층이 서점인 건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한남동의 몇몇 가게가 생각났다. 분명히 지하로 내려왔는데, 다른 출구로 나가면 1층이었던 가게들. 공간 감각이 뒤틀려 다른 세계에 잠시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점이 2층인 덕분에, 그리고 고층 건물이 없는 덕분에 눈이 탁 트이는 풍경에 둘러싸여 서점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카페 앞쪽에는 인피니티 풀이 있어서 또 한 번 트이는 느낌. 수영장에서는 멀리 바다까지 보인다. 비가 와서 흐렸지만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가슴이 시원했다.


서점 구경을 좋아한다면 추천 ⓒ 우주 OOZOO


서점 끝에는 작은 편집샵이 있어 다양한 소품을 살 수 있었다. 수영복이나 간단한 비치웨어, 주방 용품 같은 것들. 예쁘게 꾸며져 있어서 사진 찍기 좋았다.


물건은 많지만 꼭 사고 싶은 것은 없어서 구경만 했는데, 젊은 엄마들은 비치웨어도 사고, 작은 소품도 눈여겨보더라. 주방 용품이 굳이 왜 있나, 했는데 타겟팅이 확실한 편집샵이었던 것으로.


힙한 도시 감성의 편집샵 ⓒ 우주 OOZOO


짧은 휴가도, 코로나 시대의 여행도 모두 꿈같았다. 가면서도 불안하고 머무르면서도 내내 걱정이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사는 지금에서는 그때가 얼마나 감사한 기회였는지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여행을 다녀왔다는 게 현실 같지가 않다. 그래서 이터널 저니를 떠올리면 '꿈같은 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시골 중의 시골 속에, 도시 냄새 폴폴 나는 큰 서점이 있다는 게 자연스럽기도, 이상하기도 하다. 관광객을 끌어모으려면 이런 시설이 꼭 필요하니 힙한 공간이 필연적으로 늘어날 테고, 관광 수입은 늘어나겠지만, 원래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충분할까? 혹은, 얼마나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있을까? 제주도 산간처럼 도로 한가운데 버스 표지만 꽂혀있는 아찔한 버스정류장도 많던데.


남해 인구의 37% 정도가 60대 이상인데(2020년 남해군 통계 참고), 남해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더 젊은 세대일 것이고 서로 머무르는 공간도 몹시 다를 것이다. 아난티 남해로 들어가는 길에 지나던 가장 가까운 읍내에서도 외관부터 도드라지던 편집샵 겸 카페 '앵강마켓'이 있었다. 남해군에서 생산된 쌀, 멸치, 양념 같은 제품을 팔고 있었지만 지역 수협에서 파는 제품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건너편에 몇 개의 다방이 오종종 늘어서 있었는데 그쪽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어쩌면 서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사람들이 동시간대에 같은 지역에 머무른다는 게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대자본 속에서 태어난 서점이 가장 외진 지역에 있다는 게 가장 꿈같은 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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