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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Oct 05. 2020

'로컬'이라는 키워드

에피그램의 로컬 스테이 '올모스트홈 스테이 - 고창' 경험기

(2020년 2월 방문)


작년 겨울쯤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모임에 다닌 적이 있다. 대부분 카페 경험을 나누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은 발견은 에피그램의 '올모스트홈 스테이'였다. 이미 아트선재센터 옆 카페를 경험했기 때문에 어떤 톤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을지 잘 그려졌다.


추천해준 분의 후기에서 예약을 결심한 포인트는 단 몇 달만 진행되는 팝업 형식의 경험이라는 점, 그리고 모든 것을 로컬에서 해결하되, 스테이보다 로컬이 더욱 주목받게 하는 행사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고창은 '복분자'와 '장어'만 떠오르는 동네라 가서 무엇을 구경할 수 있을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상하농원도 청보리밭도 남의 이야기 같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 고창까지 간 이유는 '로컬'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다르게 해석해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제주의 플레이스 캠프나 베드라디오와는 어떻게 다를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떠났다.


'고창'이라는 지명은 당연히 알았지만 막상 고창에 가려니 어디에 붙어있는지 몰랐다. (나는 선운사랑 장어랑 복분자만 생각했지... 다 그렇지 않냐고...) 태안반도와 가까이 붙어 있고, 심지어 완전히 내륙이 아니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어쩐지 먹을 게 많더라니.


체크인/아웃을 하는 프론트 겸 쇼룸 ⓒ 우주 OOZOO


처음으로 만나는 공간은 프론트 역할을 담당하는 별채다. 쇼룸을 겸하고 있어 에피그램의 제품을 구경할 수 있고, 고창 보리로 만든 웰컴 티, 스낵과 함께 한숨 돌리고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고창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식료품이 구성되어 있어 로컬의 특색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숙소는 별채 바로 옆에 있었고 한 채를 방 두 개로 나눈 구조였는데, 우리가 예약한 날에는 옆 방이 비어있어 조금 더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어서 역시 '잘한다 (잘 만든다)'고 생각했다.


아늑한 내부 ⓒ 우주 OOZOO


방 안에는 숙소에 관한 모든 것에 관한 가이드, 그리고 고창군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았다.

공유가 등장하는 에피그램 화보집은 눈도 즐겁지만 고창의 면면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여행책자였다. 촬영한 곳을 따라다니기만 해도 여행코스가 완성되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아름다움을 만났다.


특히 고창군의 로컬 맛집을 정리한 책자 덕분에 고창의 맛을 배웠다. 관광객을 위해 개발된 '관광객용 식사'가 아니라 '민물새우탕'처럼 현지인이 사랑하는 메뉴가 주로 소개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휴일과 겹쳐 점찍어둔 곳을 모두 가지는 못했지만, 고창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다.


여행지의 지역과 사랑에 빠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로컬의 맛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자와 같은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고창 백반 로드'라는 팝업 행사도 열렸었다. 백반 로드에 참여한 식당의 지도와 간단한 소개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보다도 믿음직스럽고, 검색도 잘 안 되는 동네 식당에 가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방에 딸린 누마루 ⓒ 우주 OOZOO


고창의 곳곳을 구경하고 다시 숙소에 돌아오면, 에피그램의 제품으로 또 다른 하루를 살 수 있다. 원하면 쇼룸에서도 구매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모델.


고창의 스테이는 이미 만들어진 한옥마을을 에피그램이 잠시 위탁 운영하는 것이라 숙소 자체의 역사나 맥락을 알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이야기가 있는 공간에서 운영한다면, '로컬'이라는 키워드를 잘 버무려 조금 더 매력적인 스토리를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예쁘기도 하지 ⓒ 우주 OOZOO


고창에서 나는 것들로 꾸려진 아침식사. 모든 음식의 원산지가 고창이었다. 상하농원의 요거트, 보리 그래놀라, 보리 머핀, 블루베리 처트니, 사과와 고구마, 삶은 계란, 그리고 따뜻한 차까지. 배가 안부를 것 같아도 은근히 든든한 구성이었다. 우리 방에 딸려있던 누마루에서 먹고 싶었는데 너무너무 추워서 포기.


고창의 아침식사 ⓒ 우주 OOZOO


로컬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쓰이면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해석하는 것 같다. 서로 합의가 된 정의는 없는 것 같은데, 단순히 '지역'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지역과 지역의 자산 - 자원, 사람, 문화, 네트워크 등 - 을 모두 아우르는 단어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이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바로 이 장면을 만났을 때다. 고창에서 난 것들로 만든 음식, 손길이 닿은 공간, 오래된 읍성과 시장, 뜻밖의 대나무 숲과 바다도 모두 좋았지만 '이곳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나는 것, 그것이 로컬의 본질인 것 같기도 하다.


아름답고 고요한 ⓒ 우주 OOZOO


여태까지는 지역의 자원을 테마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로컬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여러 개 준비되어 있지 않아도, 특별한 '체험'을 하지 않아도 지역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같은 맥락에서 에피그램의 스테이는 기획/운영자가 깊이 개입하지 않고도 로컬을 경험할 수 있게 자연스러운 터치를 곳곳에 심어두었고, '이곳에서만 만나는 무언가'를 다양한 방법으로 마주칠 수 있었다.


'로컬'이라는 키워드를 제대로 살리려면 지역의 어떤 특색, 어떤 사람, 어떤 취향과 낯선 이를 서로 만날 수 있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접점을 어떻게 만들어줄지, 그리고 일상에 스며들 아주 작은 영감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여행 이후의 삶에 로컬의 무언가가 남지 않으면 제대로 만난 것이 아니니까.


고창의 아름다움 ⓒ 우주 OOZOO


이제 나에게 고창은 장어와 복분자의 도시가 아니다. 고창은 칼바람 속에서도 꼿꼿했던 대나무, 선운사의 윤슬과 든든한 배롱나무, 곱디고운 모래다. 눈 닿는 곳곳마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던 곳, 고창.

 


* 올모스트홈의 팝업 스테이는 끝났지만 숙소 자체는 경험할 수 있다 (고창읍성한옥마을 홈페이지 참고).

지금도 예쁜 집, 좋은 컨디션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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