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책 #16
제일 친한 친구들과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묵었다. 화장실이 우리 집 세 개쯤 되는 아주 큰 객실이었다. 화장실은 ㄱ자 구조로, 전체적으로 브라운톤의 대리석으로 둘러져 있었다. 벽에는 따뜻한 느낌의 주광색 조명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가장 안쪽 벽에는 큰 욕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목욕탕에나 있을법한 크기의, 말하자면 냉탕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앞에는 하얀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으로 꾸며진 화려한 욕조가 하나 더 있었다.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색깔 블록이 이리저리 엮여있었다. 브라운 톤의 화장실에 알록달록한 욕조라니. 전혀 조화롭지 못한 색 조합인데도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도 욕조가 참 돋보였다. 이 욕조를 우리만 보는 게 아까울 정도로 예뻤다. 게다가 욕조이긴 해도 작은 수영장처럼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마지막으로 욕조를 즐기고 싶었다. 이 아름다운 욕조를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친구들이 떠드는 사이 혼자서 목욕을 했다. 어제는 발견하지 못한 창문의 초록을 구경했다. 화창한 날씨였다. 물은 적당히 따뜻했고 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을 떴다.
오늘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