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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Oct 26. 2020

수줍은 당신

100일 쓰기 #6

우주 OOZOO


오늘은 미팅팅팅 데이였다. 밀린 일을 하고 전철역으로 터덜터덜 가는데, 글쎄 카드지갑이 없는 거다. 가방 바닥에도, 수첩 사이에도, 도시락 보자기 속에도 없다. 뭘 잃어버리기 어려운 사람 (나는야 꼼꼼쟁이)이라 이런 일이 생기면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진다. 차분히 생각한다. 사무실, 사무실에 있을 거다. 눈을 비비고 안경을 닦고 책상 위아래 모든 걸 치워봐도 카드지갑은 나타나지 않는다.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봐도 무릎만 아프다. 옆 사람 뒷 사람 자리를 아무리 쳐다봐도 소용이 없다. "어떡해..."를 뱉는 동시에 집으로 갈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이 팝업창처럼 튀어나온다. 일 년도 채 함께 하지 못한 카드 지갑을 위해 기도한다. 고마웠어. 내가 미안하다. 눈을 돌려 간이 쓰레기통을 쳐다본다. 아까 급히 허기를 때운 바나나껍질이 쳐박혀 있다. 내일까지 놔두면 초파리가 생길까 조금 걱정이 된다. 그래, 이거라도 버리고 가자. 쓰레기통을 집어든다. 그리고,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당신. 나는 새보은약국 약 봉지와 영수증 사이에서 희망을 본다.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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