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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Nov 09. 2020

단감

100일 쓰기 #10

우주 OOZOO


지난 주말, 친구에게서 단감 열한 알쯤을 얻어왔다. 혼자서는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로 결정했다. 같은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보는 익명 카톡방에 글을 올려두고, 우선 밥을 지었다.


두부를 굽고 국을 데우는 동안 카톡방에는 조심스러운 나눔 요청이 차곡차곡 쌓였다. 어차피 집 밖으로 콧바람 쐬러 나가려던 참이라 배달을 가기로 했다. 다들 한 알, 또는 두 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해서 제일 예쁘게 생긴 친구들을 골라 작은 비닐팩에 나누어 담았다. 마침 모두 같은 동이라 가뿐한 마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배달을 받기로 한 첫 번째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문고리에 걸린 까만 비닐봉지를 마주했다. 괜찮으면 바꿔먹자는 메시지와 함께 오렌지 두 알이 담겨 있었다. 다른 집 문고리에도 잘 먹겠다는 쪽지와 간식 꾸러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집 위층에 사는 이웃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는데, 귤 네 알을 나누고 싶다며 신이 난 얼굴로 작은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왔다.


한바탕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양 손에 귀여움을 대롱대롱 매달고 왔다. 귤을 씻는 동안에는 곱게 깎은 단감 사진 몇 장이 날아왔다. 달게 먹었다는 감사 인사들과 함께. 별 뜻 없이 나눈 단감에 다정함을 푸지게 얻었다. 다정해 요정이 곳곳에 있어 행복했던 일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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