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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May 06. 2019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공간, 취향관

'미드나잇 인 서울' 참석 후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된 페스티벌, '미드나잇 인 서울'.


취향관에서 열린 행사에 다녀왔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의 과정을 공유하고, 결과물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살롱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이라 축제의 컨셉이 더 명확해 보였고, 공간의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앤틱하면서도 실험적이어서 머무르는 내내 기획과 구현이 참 잘된 행사라고 느꼈다. 주택이었던 건물이라 '방'이 여러 개여서 '작업실을 방문한다'는 컨셉으로 이어지는게 자연스러웠다.


눈길을 확 사로잡았던 피아노 ⓒ 우주 OOZOO


컨텐츠 역시 뭐 하나 아쉽지 않았다. 컨셉이 좋아도 컨텐츠가 부실하면 돈이 아까웠을텐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Day 1 프로그램 중 두 개 세션 외 모든 작업실에 방문했다. 싱어송라이터, 에세이 작가, 시인, 피아니스트, 사진가, 디제이를 만났다. 넓은 마당에서 연주하던 재즈, 드로잉 작가의 작업실을 놓쳐서 무척 아쉬웠다.

그렇지만 작업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주고 받는게 적극 장려되어서 좋았다. 작가들이 준비해온 것만 이야기한게 아니라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작업실을 돌다가 예전부터 알던 작가도 있어서 반갑게 인사했다(물론 나만 반가웠다).


마당에서는 재즈 연주를 ⓒ 우주 OOZOO


나는 영감을 지속시켜 결과물로 이어지게 하는 힘에 대해서 물었다. 싱어송라이터 주윤하님은 '작은 조각을 마음 속에서 굴리다가 상상력을 더해 만든다'고, '심심한 시간을 보낸다'고 말씀해주셨다. 말씀하시는 내내 목소리가 너무 감미로워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또 노트에 받아 적을 때 단어가 아름다워서 '역시 가사 쓰는 사람은 다른가봐'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보고 듣는 것들을 예민하게 느끼고, 그것을 잘 모아두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메모 습관에 대해서도 다시 다짐해보기도 했다.


예술가가 자기가 느끼는 것들을 예민하게 캐치해내고, 생각하는 바를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 늘 놀랍다. 어떻게 예술가가 되는 걸까?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걸까?


목소리 천재 주윤하님 ⓒ 우주 OOZOO


작업실에서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말을 많이 안해서 나와 다른 여자 분만 이야기했다. 나도 계속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저도 약간 눈치가 보여서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세션이 끝난 뒤에 후회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게 그때뿐인걸 알면서도 지레 포기해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말 하기, 그리고 말 뒤에 이어질 관심이나 시선같은 것에 쉽게 위축되는 내 모습이 아쉬웠다. 그리고 이런 마음 때문에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을 사람들을 이끌며 살롱과 커뮤니티 사업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커뮤니티의 핵심은 운영자가 아니라 멤버니까.


ADOY 오주환님 ⓒ 우주 OOZOO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참여하게 할까?' 이다. 모객 단계도 고민스럽지만 프로그램이 나의 생각과 의도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멤버를 북돋는 방법이 가장 어려웠다.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말하게 하는 건 운영자의 몫이지만, 아무리 판을 잘 깔아준다고 해도 멤버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말짱 꽝이라는 걸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도 잘 하는 방법은 모르겠다. 그래도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고,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는 멤버가 있을 때 진짜 커뮤니티가 된다. 단순히 모이는 것 이상의 감정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DJ JEYON ⓒ 우주 OOZOO


새벽 두시까지 이어진 축제는 디제잉으로 마무리 되었다. 내가 아는 디제잉은 비트가 강한 음악이나 이디엠을 주구장창 트는 거라 몹시 궁금했다. 이날 들었던 음악들은 80년대스럽게, 그렇지만 절묘하게 요새 음악처럼 들렸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플레이리스트에 잔뜩 담아왔지만 집에서는 영 느낌이 안산다.


공간 자체는 고급스럽고, 뭔가 비밀스러운, 그러면서도 어딘가는 늘 열려있는 분위기였다. 비밀 사교 클럽에 놀러간 것 같았다. 원래 멤버십 공간이라 들어갈 방법이 없어 늘 궁금했는데 이번 기회에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디테일을 살려 개조한 건지 아니면 골격만 유지하고 디테일은 새로 추가한 건지 잘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했고 대부분 나무를 썼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내가 일하는 곳과 다르게 몹시 중후한 느낌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중년, 고혹적인 살롱 안주인 같은 느낌.


공간 곳곳에서 발견한 디테일 ⓒ 우주 OOZOO


공간을 채우던 향도 인상적이었다. 나무, 흙, 가죽 같은 향이 복합적으로 났고 아주 강하지도, 아주 약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뿌리고 온 향수랑 섞여서 방마다 각기 다른 냄새가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몸에서 같은 향기가 나서 놀랐다. 원래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향이었는데 기분 좋은 시간을 떠올리게 해주어 싫지 않았다.


공간을 기억하게 만드려면 이런 감각적인 부분들도 세밀하게 기획되어야 할 것 같다.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헤이조이스'도 공간을 위한 향을 따로 제작했는데, 엘레베이터를 타는 순간부터 다른 세계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년부터 우리 공간에 어울리는 향을 의뢰해보고 싶었지만 아직도 못했다. 꼭 만들어보고 싶다.


'비밀의 서재' 입구 ⓒ 우주 OOZOO


재미있는 공간도 있었다. 책장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서재로 들어가는 문이라던가, 작은 음악감상실처럼 생긴 천장이 높은 방 같은 곳들이다. '내가 아주 잘 아는 친구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새로운 면이 있었다' 같은 발견의 순간처럼 의외의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음악감상실처럼 꾸며진 공간은 소리를 반사시키기 위해서 천장을 각진 모양으로 만든 것 같았다. 기능적인 측면을 떠나서 보기에 아름다웠다.


취향관 입구 ⓒ 우주 OOZOO


낯설고, 떠들썩하고, 생경한 이야기 속에 흠뻑 취해있다가 고요한 새벽 거리로 나섰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머물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평소에는 아무나 붙잡고 할 수 없던 얘기를 넘치도록 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묻고, 웃던 내 모습도 새로웠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영감에 대해 이야기하던 나. 좋아하지 않는 향기를 기꺼이 즐기던 나.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과 조금은 낯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기되었다.


새로운 발견이 필요할 때, 나를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싶을 때 좋을 공간이었다. 그리고 멋진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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