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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May 03. 2019

선과 면의 공간, 듀펠센터

장안동 동네 목욕탕의 대변신

어느 날 인스타그램 피드에 #듀펠센터 가 잔뜩 나타났다. 돈카츠도 팔고 옷도 파는 희한한 곳. 조금 더 찾아보니 목욕탕이었던 건물을 바꾸었다고 했다. 오픈 후 매 주말마다 기회를 엿봤지만 우리 집과 너무 먼 곳에 있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공식 계정(@duffel_centre)을 팔로우하고 지켜보니 글을 올리는 리포터가 매력적이었다. 모든 층의 소식이 꼼꼼하게 올라왔고, 말투는 참 친근했다. 도대체 어떤 공간일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생각보다 이국적인 건물 ⓒ 우주 OOZOO


그리고 지난 3월 말, 드디어 듀펠센터에 다녀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본 장안동이라는 동네에, 엄청난 빌라촌 사이에 덩그러니 있었다. 주말이라 사람이 무척 많았고, 고대했던 콘반의 돈카츠는 오전에 이미 대기 마감되었다. 아마도 하입비스트에 오픈 소식이 올라오면서 더 유명해진 것 같았다.




듀펠센터는 30년 된 목욕탕을 고쳐 만들었다고 한다. 목욕탕의 원래 모습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목욕탕 굴뚝이 없었더라면 평범한 옛날 빌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굴뚝도 내가 진입했던 방향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아 숨바꼭질하는 마음으로 찾았다. 오픈 초기에는 기념으로 목욕탕 락커 키도 팔았는데, 내가 갔을 때에는 대야와 수건, 목욕의자 밖에 없었다.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 발견한 목욕탕 굴뚝 ⓒ 우주 OOZOO


총 3층짜리 건물로 아주 작은 마이크로 샵들이 촘촘히 들어와 있다. 귀걸이, 잡지, 향 스프레이, 옷, 신발, 가방 등 품목도 다양하다. 이렇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건물을 나눠 쓰는데 그게 공간(방) 단위가 아니라 선, 면 단위여서 신기했다. 책임져야 할 공간이 적으니 오히려 좀 덜 부담스러운 선에서 시도/실험을 해볼 수 있는 것 같다.


1층 '산책'의 경우가 그랬다. 서가를 공유하고, 책 일부는 판매하는 곳이다. 산책은 1층 전체 공간 중 2개 벽면만 사용한다. 사장님이 쓰는 간이 책상으로 0.5개 벽면이 만들어져 어느 정도 '구역'의 느낌이 났다. 무척 재미있는 기획이면서도 매출의 부담은 비교적 적을 것 같은 형태다. 작은 규모로 실험 삼아 운영해보기에는 참 좋은 모델이다.


운 좋게 사장님이 계셔서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여쭤봤다. 시간이 지나도 나쁘지 않고, 계속 가치를 지닌 게 책인 것 같다고, 본인이 좋아하는 시대의 감성을 가진 책이나 잡지를 사람들과 나눠 보고 싶다고 하셨다. (본업은 패션 관련 글을 쓰신다고!)


산책의 서가 ⓒ 우주 OOZOO


2, 3층은 주로 패션과 관련 있다. 옷, 가방, 신발, 잡화가 가득하다. 하지만 각기 다른 운영자의 공간이다. 역시 벽면 1개, 2개로 작은 샵을 모아놓았다. 귀걸이 샵은 3층에 있고, 귀걸이 꽂이가 곧 가게다. 면 단위보다 작은, 선으로 이루어진 가게다. 품목이 다양하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2층 편집샵 ⓒ 우주 OOZOO


전체적으로 미국 느낌이 물씬 난다. 현대적인 미국은 아니고 좀 더 옛날 느낌이고, 가정집 분위기다. 독특했던 것은 공간에 있는 문짝들이었다('문' 보다는 '문짝'이라고 해야 느낌이 산다).


대부분 헛간에서 뜯어온 것 같았고, 디테일이 조금씩 달랐다. 외부 문뿐만 아니라 내부에 있는 문들도, 심지어 탈의실 문들도 전부 달랐다. 예전에 커피한약방 사장님의 강연에서 들어보니, 커피한약방에 있는 문, 창문, 테이블 같은 것들을 어디선가 공수해오셨다고 했다. 공간의 분위기에 맞는 것들, 기획자의 눈에 예뻐 보이는 것들을 지방에서, 해외에서 가져다가 공간에 맞게 꾸민다고 하셨다. 아마 이곳도 그렇지 않을까.  


듀펠센터의 다양한 문짝 ⓒ 우주 OOZOO


듀펠센터를 구경하고 다시 1층으로 돌아왔다. 로비 겸 카페 '파운틴'이 있다. 목욕탕 자리에 생긴 카페라서 그런지 의자 배치를 유심히 보면 목욕탕이 생각난다. 파운틴이라는 이름도 목욕탕에서 가져왔다고 하니 무리한 해석은 아닐 것 같다. 의자와 테이블의 구분이 별로 없어서 일행 별로 테트리스하듯 옹기종기 앉게 되었다. 마치 넓은 목욕탕에서 등을 맞대고 앉아 저마다 때를 밀거나 물을 끼얹는, 목욕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목욕탕의 오마주 같은 파운틴에 앉아, '공간을 만들고 사람을 오게 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사람을 계속 끌어당기는 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의 분위기 같은 건 역시 기획자의 힘일까.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과 콘텐츠를 만들고 굴리는 것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있음을 많이 느꼈다.


목욕탕의 오마주 같았던 카페 파운틴 ⓒ 우주 OOZOO


이번 방문에서는 공간 자체의 매력보다는 듀펠센터 안에서 마주친 대부분의 직원들이 마음에 남았다. 굉장히 친근하게 안내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마치 안면 있는 이웃처럼 공간이 어떤지, 마음에 드는 향을 찾았는지 물어봐주었다(향수 스프레이 하나 사는데 꼬박 25분이 걸렸다). 물건을 판매하려는 목적이 아니고 정말 사람이 궁금하고 좋아서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부담스럽지 않게 스몰 톡을 시도하는 방식이 참 좋았다.


다시 목욕탕에 대입해보면, 손님은 직원과 대화하며 주말마다 마주치는 이웃처럼 가볍게 연결된 느낌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만나지 못한 리포터까지.)


이렇게 친해지고, 자꾸 방문하게 된다면 이 곳에서 훌륭한 커뮤니티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늘리고 꾸준히 모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주택가 한가운데에 세워진 복합공간이 유지되고 확장되려면, 어쩌면 매출보다도 커뮤니티성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선과 면, 그리고 사람이 만드는 온기 가득한 공간. 듀펠센터였다.



+ 오늘(4/28) 기준으로 뮤지션과의 토크 행사도 열렸다. 듀펠센터는 앞으로도 비슷한 취향과 감정의 결을 공유하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 될 것 같다. 다음 행사는 어떤 것일지 기대된다.


+ 덧붙여: 너무 인상 깊은 공간이라, 결국 회사에서 하는 프로그램의 연사로 모셨다. 기획과 운영에 관한 아주 솔직한 이야기는 >>> https://brunch.co.kr/@info1vid/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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