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살롱 #11] 오래된 공간의 창의적 재해석 - 듀펠센터 편
공공그라운드 기획 프로그램 [공공살롱]은 공간, 건축, 도시와 관련된 테마를 중심으로 공공그라운드의 미션인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고, 새로운 실험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번 공공살롱에서는 "오래된 공간의 창의적 재해석"을 주제로, 오래된 공간들을 되살려 해당 공간만의 아이덴티티를 살려 나가는 4개 공간의 기획, 운영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누어 보았습니다. 각 지역의 특수성과 공간의 역사성을 살려 나가는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글, 사진 | 우주
이름도 생소한 장안동, 주택가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오래된 다세대 주택 한복판에 미국풍 건물이 나타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쇼핑센터’를 표방하는 듀펠센터입니다.
1층에서는 커피를, 2, 3층에서는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미식가 사이에서 유명한 식당과 이자카야도 알차게 자리 잡았습니다. 굿즈로 목욕탕 대야와 락커 키를 파는, 목욕탕 굴뚝을 가진 듀펠센터의 변신 이야기를 안태옥 디자이너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듀펠센터는 오래전부터 운영 중이던 안태옥 디자이너의 브랜드 쇼룸을 이전할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청호탕을 만난 순간은 조금 특별합니다.
“이태원에 있던 매장을 옮기려고 하니까, 서울을 다 돌아다니기는 어려워서 로드뷰로 건물을 찾았어요. 컴퓨터로 동네 구경을 한 거죠. 어쩌다가 장안동을 찍었는데, 굴뚝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사려는 생각은 진짜 없었고, 굴뚝이 마음에 들어서 부동산 사장님께 ‘이런 건물이면 좋겠다’고 했는데, 사장님이 바로 접촉을 시도해서 얼떨결에 진행하게 됐어요.”
청호탕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1983년도에 건축되었습니다. 그 무렵 청호탕은 이미 성업 중이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핫플레이스였죠. 매입 후 바로 들어가지 않고, 6개월 정도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건물에 한 층을 더 올릴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어요. 대출금에 맞춰 최대한 아끼는 공사를 진행했거든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가 디자인하고,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은 발품을 팔아 샀고, 일 맡기는 것도, 공사 감독도 직접 했어요. 장인어른의 절친한 친구가 미군부대에서 공사를 하셨던 분이라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에는 목욕탕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찌든 때와 냄새, 바닥 높이 차이가 너무 심해서 결국 많은 부분을 덜어내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공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목욕탕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중 시설이다 보니 다른 건물에 비해 지켜서 건축해야 할 것이 많았던 것 같아요. 바닥이나 타일이 너무 두꺼워서 안 깨지는 일이 많았죠. 게다가 공사를 직접 감독하다 보니 기간이 한없이 늘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총 1년 가까이 걸렸으니까요. 공사 초기에는 동네 주민 분들이 다 불편해하다가, 공사가 너무 길어지니까 나중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오는 거냐’며 모두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안태옥 디자이너가 공사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점은 자재였습니다. 기성품을 이용한다면 결국 틀에 박힌 건물이 되거나, 다른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자재를 전부 수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덕분에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원래 빈티지 모으는 걸 좋아해서 문짝이나 조명은 사다 놓은 게 있었어요. 손잡이, 조명 등 디테일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직접 수입했어요. 그리고 문짝 사이즈에 맞게 공사를 진행했죠. 1층 현관문은 미국 어느 고등학교 체육관에 있던 문이에요.
건물에 어떤 주제를 담거나 테마가 있는 상태에서 전체 기획을 하진 않았어요. 지금의 건물 모습은 생각날 때마다 제가 좋아하는 조각들을 붙인 것뿐이지, 특별한 컨셉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생각보다 훨씬 큰 공간을 얻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나눠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잡동사니를 뜻하는 '듀펠 (Duffel)'답게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있어야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고, 톤 앤 매너를 맞추기보다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상상했습니다.
“위치가 불편한 편이라 손님이 여기까지 온다면 죄송하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에 왔을 때 최대한 많이 쉬고, 지친 무언가가 힐링되는, 기분 좋은 공간이 되기를 바랐어요. 쇼핑센터가 되려면 마시고, 먹고, 쉴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크고 유명한 것보다는 작은 것들이 밀도 높게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섭외를 시작했죠.”
입점할 브랜드를 모셔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임대료로 수익을 내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임대료는 최저로 설정했습니다.
“듀펠센터에 입점할 브랜드는 우리 고객에게 소개하기 부끄럽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브랜드 철학이 듀펠센터의 방향과 너무 동떨어져있다거나 장사만 잘되는 곳은 배제했고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친구들을 컨택하기도 했어요. 사실 모두 아는 사람이기도 해요. 지금은 열네 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습니다.”
듀펠센터의 내부 모습을 함께 보며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목욕탕이 물 나오는 곳이니까, 카페 이름은 ‘파운틴 Fountain’으로 정했어요. 미국에서는 탄산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도 파운틴이라고 하기도 하거든요. 듀펠센터가 문을 열었을 때, 동네 어르신들 대부분은 ‘내가 갈 곳은 아니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웃음) ‘나는 좀 세련됐다’는 분들은 오시고요.
개인적으로 도도한 가게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데요. 그래서 더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저는 멋있는 곳을 목표로 한 게 아니에요. 더 인간적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곳을 상상했던 거죠.”
안태옥 디자이너의 설명이 끝난 후, 수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기획, 운영 단계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과 솔직한 답변이 오갔습니다. 일종의 복합 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점도 가감 없이 나누었습니다.
“브랜드를 유치하는 게 어렵긴 한데, 저는 함께 하는 것에 더 의의를 뒀어요. 인테리어도 각 브랜드와 협의는 하지만 제가 디렉팅 하지는 않아요. 듀펠센터 내부는 빈 도화지 같다고 생각해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입점한 브랜드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적극 지원하고 있어요.
사실 제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운영하니까 이만큼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위탁했다면 지금처럼은 운영하는 건 안될 것 같아요. 콘텐츠나 운영하는 사람들이 힘이 없으면 처음 모습을 지속하기 어려운 것 같고요. 제가 온 열정을 쏟고 있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도 호응해준다고 생각해요.”
리모델링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본인이 모든 과정에 직접 관여한 것도 듀펠센터라는 정체성을 쌓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고객이 찾아올 때마다 너무 감사하고, '듀펠센터 만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만들고, 취향을 쌓았기 때문에 통일감이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듀펠센터가 편안하고 도도하지 않은 곳이 되었으면 하고, 그런 것들을 SNS 운영에도 반영해요. 요즘은 옷 외에도 방문하는 사람을 위해 듀펠센터의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고객 편의를 위한 부분도 좀 더 필요하고요.”
듀펠센터의 이야기를 통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은 공간의 외형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 직원의 태도 등 공간을 채우는 소프트웨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요. 공간 기획과 운영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이루어질 때 얼마나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공간, 건축, 도시의 이야기를 담는 공공살롱의 다음 프로그램도 기대해주세요!
[사진 참고]
https://hypebeast.kr/2019/3/duffel-centre-never-green-store-spectator-konban-an-te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