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살롱 #10] 오래된 공간의 창의적 재해석 - SSQQ 편
공공그라운드 기획 프로그램 [공공살롱]은 공간, 건축, 도시와 관련된 테마를 중심으로 공공그라운드의 미션인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고, 새로운 실험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번 공공살롱에서는 "오래된 공간의 창의적 재해석"을 주제로, 오래된 공간들을 되살려 해당 공간만의 아이덴티티를 살려 나가는 4개 공간의 기획, 운영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누어 보았습니다. 각 지역의 특수성과 공간의 역사성을 살려 나가는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글, 사진 | 조이
Slow Slow Quick Quick(슬로우 슬로우 퀵 퀵; 이하 SSQQ)은 을지로에 위치한 개방형 예술 스튜디오였습니다. 서울시 중구청에서 진행한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김갑환'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던 이 공간은 을지로뿐 아니라 세운상가, 대림상가, 진양상가 등 을지로 일대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6월 30일, SSQQ은 임차하고 있던 건물과 계약이 종료되며 을지로 프로젝트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SSQQ의 디렉터였던 양아치 작가와 함께 2015년부터 을지로 골목의 장인·예술가들과 진행했던 다양한 실험들, 그리고 도시재생 사업과 더불어 을지로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짚어보았습니다.
을지로 3-4가 골목에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보셨던 분들은 아실 겁니다. 서울의 도심에 이런 곳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놀라움을. 지금은 '힙지로'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지만, 을지로는 서울의 도심에서도 유난히 오래된 건물이 많고, 월세가 싼 곳이었습니다. 대부분 재개발을 기다리는 노후화된 건물이었죠. 예술가들은 이 곳에서 작은 실험들을 시작했습니다.
2015년, SSQQ은 중구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계기로 을지로의 40년 된 건물에 들어섰습니다. 건물주가 공공에 단기적으로 임대할 수 있도록 내어준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건물은 입주 당시 전기, 수도, 화장실 등이 마련되어있지 않아, 상주 건물로 사용하기에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양아치 작가는 이 공간을 청년들과 함께 바꿔나가며 다양한 실험들이 이뤄지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청년에게 ‘기회에 대한 새로운 약속’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던 시점이었어요. 기회의 발표, 발표의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인데요. 이를 해결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저희는 이에 대한 첫걸음으로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일을 했어요. 작업실을 가지고 있으나 운영비에 치여 결국 작업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든 청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작업실을 개방하여 공(共) 간으로 바꿔 내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만들어진 미술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방향을 찾고자 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800/40(창작공간)', '300/20(샵)', '200/20(책방)'입니다. 청년이 공간을 소비하는 형태, 즉 '보증금/월세' 형식으로 공간의 이름을 정했습니다. 이곳을 시작으로 SSQQ은 다양한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을지로 창작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양아치 작가는 청년이 자신의 수준과 콘텐츠로 도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꾸준한 상담과 피드백을 이어 나갔습니다. 고민의 결과는 다채로운 공간들과 흥미로운 프로젝트들로 나타났습니다.
“세운상가의 좋은 점은 6시만 되면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고 집에 가셔서 그 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이었다는 거예요. 자본주의가 이상한 게, 영토를 소유한다기보다는 시간을 소유하는 것 같아요. 명동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이지만, 오후 11시부터 오전 9시까지는 사막과 같은 공간이 되죠. 시간에 대입해 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아요.”
SSQQ는 기존에 활용되던 도시의 시간을 달리 사용함으로써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해갔습니다. 상인들이 문을 닫고 들어가는 6시 이후, 을지로 골목을 자신들의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각도로 도시를 바라보며, 자신들이 이해한 을지로 일대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습니다.
“SSQQ이 입주한 공간은 원래 미싱 공장이었어요. 아무래도 공간의 구조가 미싱 공장에 맞춰져 있다 보니, 처음에 식당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식당을 하려면 신고를 하고, 교육을 받아야 해요. 신기했던 게, 교육을 받으러 갔더니 경력 있는 주방장들이 자신의 명함을 주며 구직을 하고 있더라고요. 트렌디한 음식은 계속 소비가 일어나지만, 중국집이나 백반집 같은 보편적인 일들은 사회에서 멀어져 간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요와 공급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죠.”
“그들의 노하우를 활용하여 오픈소스 개념의 식당을 기획했어요. 서빙된 음식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적은 가격에 만들어내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하는 식당이었죠. 소비자의 수요는 충분히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주방장을 설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운영할 당시 식당의 메뉴는 저렴한 면요리(우동면 1개의 가격은 약 100원)가 주를 이뤘어요.”
SSQQ에서 일어난 다양한 실험들은 그들이 접한 사회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시와 사회 문제를 고민하며 이를 물리적으로 보이는 형태로 풀어가려 했습니다. 도시에서 보이는 ‘수요와 공급의 비대칭’, 양아치 작가는 SSQQ에서 이루어졌던 다양한 사회 문제를 접목한 예술 프로그램들을 소개했습니다.
“을지로에 버려진 식물들을 보며, 축하의 용도로 잠깐 쓰이고 버려지는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어요. 살리고 가꿔서 다시 필요한 곳으로 갈 수 있는 공급 체계를 만들었어요. 또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버려진 화환을 해당 장소에 보내는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화환은 축하의 장소에도 가야 하지만, 기념이 될 만한 장소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샘플을 만들어 보면서 결과 중심적인 사회에 대해 고민해 보는 프로그램인 'Sample mind', 플라스틱을 이용해 꽃과 나무의 형태를 만들어보면서 도시 순환 속에서 프로덕션의 위치를 생각해 보는 '금강식물원' 등 다양한 전시 및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양아치 작가는 SSQQ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를 종합하여, 을지로 일대를 주제로 하는 축제를 진행했습니다.
“이것저것 기획하고 실행을 하다 보니, 우리가 한 일을 정리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당시 가진 돈 300만 원으로 '세운상가 좋아요. 대림상가 좋아요. 청계상가 좋아요'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생각했던 것에 비해 결과가 너무 좋았죠. 이 일을 시작으로 다양한 제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가전제품 전문상가에서 문화예술 창작 공간으로 변신한 세 곳의 문화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했습니다. 세운상가에서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한 사장님이 직접 세운상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투어(‘선생님 좋아요’)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젝트와 전시가 진행됐습니다. 성공적으로 행사가 마무리되자, SSQQ는 지자체로부터 행사 기획을 제안받았습니다.
“지금은 세운상가의 옥상이 정원처럼 잘 꾸며져 있지만, 당시에는 가벽과 슬레이트 지붕이 무너져가는 열악한 상태였어요. 그곳에서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비둘기 오디오&비디오 페스티벌'을 진행했어요.
당시 커다란 비둘기를 만들어 옥상에 세운 것이 이슈가 됐었는데요. 비둘기를 키워드로 잡은 것은 도시에 가장 많이 있지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에 마음이 갔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과거에는 평화의 상징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처분해야 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죠. 도시의 상징인 비둘기와 세운상가의 특징인 오디오와 비디오를 페스티벌의 키워드로 잡았습니다. 다양한 전시, 공연과 마켓이 진행됐고, 을지로 일대의 약 40개의 공간이 참여했습니다.”
페스티벌에 참여한 공간에는 깃발을 달아 참여 공간임을 표시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이 공간들을 생각하며 양아치 작가는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을지로 재개발 사업으로 많은 공간이 사라졌지만,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창작 공간 역시 존재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SSQQ는 지자체로부터 사무실에서 퇴주해달라는 공문을 받게 됩니다. 임대 계약 기간이 종료되었던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을지로에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도시재생 및 개발 사업과 더불어 SSQQ는 을지로에 작별을 고해야 했습니다. 함께 했던 다양한 장인들과 예술가들과도 헤어졌습니다.
켜켜이 쌓은 역사를 뒤로하고, 여러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묻은 공간은 단번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중들과 언론 역시 유명한 음식점이 사라진다고 했을 때에만 크게 반응했던 것도 참 아쉬웠던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도시는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이어야 하며, 단순히 소비문화만으로는 그 매력을 쉽게 잃어버리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양아치 작가는 을지로에서 최선을 다했던 시간을 돌아보며, 함께한 상인, 개발자, 엔지니어, 예술가분들이 일시에 사라진 상황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또한, 을지로의 도시재생 과정을 전하며 사람 생태계 안에서 도시재생이 어떻게 위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함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