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몇 달이 지났다.
작은 방이 두 개나 딸린 삽십이 평짜리 아파트 한 채. 입지가 좋아 재건축 예정지가 된 그 금싸라기 아파트에는 여전히 우리 엄마의 원한과 미련이 가득 남아 있다.
대가족이 살던 집도 아니거니와, 고작해야 백 세 가까이 된 노인이 겨우 살았던 공간임에도 사람의 빈자리가 선명했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그곳은 아무도 없는 사이 먼지가 하얗게 쌓여서 공간 자체가 할머니처럼 훌쩍 늙어버린 것 같았다.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남은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나의 물건이든, 가족의 물건이든, 남의 물건이든, 그것은 순리이자 도리였다. 사실 할머니의 상속자는 삼촌 단 한 명이었기에 바쁠 일도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쌓아온 생활 도구들은 어쨌거나 처분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과 사물은 다른 법이라지만, 때때로 크게 다르지도 않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얼굴 모르는 요양보호사에게 맡겼던 것처럼, 가족 대다수가 청소 센터를 쓰자는 의견에 동의했다. 틀린 의견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온전히 장외의 나는 나의 마지막이 전부 모르는 사람의 차지가 되리라는 현실이 조금은 쓸쓸해진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영영 지켜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결국에는 엄마가 나섰다. 지인에게 트럭을 하나 빌리고, 수고비랍시고 이십만 원을 받아, 서울 외곽에서 서울 중심부까지, 엄마는 마지막이 될 그 길을 이제야 떠났다.
엄마는 할머니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미워했다.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1남 3녀의 막내딸. 전부 누나에 막내만 아들. 전형적인 그 시대의 어머니와 전형적인 그 시대의 아버지, 그리고 아들과 딸.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적어도 벽에 붙어있었던 것이 나의 사진이 아님은 안다. 사촌 오빠들의 돌 사진, 삼촌의 결혼식 사진, 삼촌의, 삼촌의, 삼촌의. 엄마는 한 번이라도 찾아뵐 걸 그랬다고 후회했지만, 결국 미움도 사랑도 너무 컸던 것이다.
근 십여 년은 아예, 그전에도 자주 찾아뵙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내 기억은 선명하다. 촌스러운 옥색 문을 열고 들어가면 손때가 타서 반질반질한 선반이 가장 먼저 보인다. 할머니는 그 연세에도 깨나 정정하게 우리를 반겨주셨는데, 굵게 주름진 손은 나의 그것과 너무나도 달라서 어쩐지 생경하기까지 했다. 집안을 가득 채운 꿉꿉한 냄새(그 정체가 장 담그는 냄새라는 사실을 나는 이날 알았다)와 베란다에 수북하게 자라난 난초, 저편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단돈 이십만원어치 집 정리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의 손에는 추어당 일인분과 갈색의 투박한 항아리가 하나 들려 있었다.
죽은 사람이 고이 모셔둔 항아리라 함은 금괴나 돈, 뭐 그런 획기적인 것들을 상상할 수도 있겠으나 유감스럽게도 그 정도의 집안 형편은 아니다. 뚜껑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끼익 쇳소리를 내는 묵직한 뚜껑을 조심스레 열면 속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열어서 햇빛을 쬐면, 까맣고 짭쪼름하고 끈적한 액체와 벽면에 달라붙은 까만 결정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는 물었다. 처음 보지?
이게 씨간장이야.
씨간장이란 새로운 간장을 담글 때 씨앗처럼 사용된다고 해서 씨간장이다. 새로 담근 간장에 이 ‘씨간장’을 넣으면, 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의 맛을 재현할 수 있으며 어디서는 억만금을 줘도 얻을 수 없는 귀한 물건인 데다 무슨 문화재로 지정 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주르륵 뜬다.
태어나서 처음 본 씨간장은 옆면이 이미 소금 결정으로 말라붙어서, 갈색도 까만색도 아닌 것이 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기만 했다. 진득하게 늘어지는 까만 액체는 약간 짜고, 감칠맛이 느껴지고, 이상하게도 달큰한 맛이 남았다. 그것은 확실히, 우리가 늘 먹어온 시판 간장과는 다른 맛이었으며 어쩐지 멀고 걸쭉했다.
한 번 먹어 보면 안다. 그냥 간장과는 다르다. 몇백 년이고 이어온 간장은 충분히 문화재나 다름없다고 실감하는 동시에, 할머니 댁의 꿉꿉한 냄새가 장 담그는 냄새였음을 깨닫고, 그리고 무엇보다 얄궂은 운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을 애틋하게 사랑해서 아들에게만 모든 재산을 물려주었던 할머니가, 아무도 모를 곳에 숨겨두고 내어주지도 않았던 그 소중한 ‘씨간장’이, 아들에게는 발견조차 되지 않고 가장 홀대받던 막내딸에게 버려지듯 넘어가고 말았다는 현실은 웃기지도 않는다.
내게 추어탕은 추억의 음식이다. 말장난 같은 것은 아니고, 아직 엄마와 할머니의 사이가 괜찮았을 때,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는 몸에 좋은 것이라며 꼭 추어탕을 시켜주시고는 했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것은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먹었던 음식이기도 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직접 미꾸라지를 사다 고아서 만든 추어탕이, 태어나서 먹어본 추어탕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간장을 담그겠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만약 우리가 간장을 담그게 된다면, 할머니의 손맛을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잘 기억하는 건 삼촌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될 것이다. 할머니는 그 좋은 간장을 우리끼리 먹게 되어 아쉽다고 느끼실까? 아니면 너라도 잘 먹으니 되었다고 느끼실까? 혹은, 어쩌면, 정말 어쩌면 유언장에도 적혀있지 않았던 그 씨간장은 처음부터 우리 엄마의 몫이었을까? 아무도 뒷정리를 하지 않으리란 것을 예측하시고, 그렇게 남겨두었을 확률은.
정답은 모르고, 무엇이든 늦었고 어떻게든 늦었다. 그리고 아마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늘 그렇게까지 의도적이지 않으니까. 늦어버린 감정은 바닥에 걸쭉하게 가라앉아서 언젠가 증발하고 응어리처럼 말라붙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결국 그 간장을 담그게 될 것이라고 어렴풋이 확신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냥 그럴 것 같다. 왠지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