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일

by 믈름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을 정도의 거금이 지금 당장 내게 생긴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소원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모든 사람의 소망은 결국 돈으로 귀결되는데, 내가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참 재미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종종 돈만 있으면 네가 행복할 수 있겠냐고 비꼬는 사람들이 있는데,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돈이 있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지능의 문제다. 추잡하게 돈 따위에 연연하고 싶지 않지만, 애석하게도 성인으로 태어나지는 못해서 늘 물질적인 것에 구애되고 만다.


돈이 생기면, 일단 학자금 대출을 갚자. 내 것과 동생 것을 모두. 그리 큰 금액이나 이자는 아니라지만, 내가 돈을 갚아야 그 돈으로 후배들이 다시 빚더미에 앉을 수 있댄다. 자라나는 대한민국의 꿈나무들을 위해 선배가 한턱 쏜다. 다음으로는 부모님의 대출을 갚고 차를 한 대 새걸로 사자. 삼 년쯤 쓴 중고차가 아니라, 반짝반짝하는 새 차를 사자. 나는 SUV가 좋더라. 그리고 집도 고쳐야 한다. 곰팡이가 생길랑 말랑 하는 화장실과 물얼룩이 진 천장을 고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방 옷장을 트는 거다. 그 자리에는 전시장을 놓고, 모으는 인형이나 물건들을 예쁘게 놓자.


그러고도 돈이 남으면 남부지방에 적당히 비옥하고 산과 물이 가까운 땅을 사자. 한옥과 양옥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주택을 하나 세우고, 온실도 하나 만들어서 나만의 정원과 농원을 가꾸는 것이다. 돈이야 충분하므로 아무도 만날 필요가 없다. 테라스에는 등나무를 늘어뜨려서 봄이면 꽃향기가 퍼지고 여름이면 그늘이 되게 하자. 꽃이 필 때면 작년에 말려놓은 허브를 끓여 마시고, 꽃잎을 조금 따다가 시럽도 만들어 보자. 정원 한편에는 양앵두나 단풍딸기처럼 시장성 없는 과일나무를 심고, 어디 가서 돈 주고 못 사 먹을 잼을 만들자. 넓은 텃밭에는 수박참외 같은 토종 작물과 마이크로토마토 같은 이국 작물을 심어서 알록달록하게 꾸미자. 모퉁이에서 자라는 허브는 내년의 친구가 될 것이다. 수확 철이 되면 지인들을 모아 가든파티를 열거나, 소외계층 아이들을 초대해 농촌 체험을 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쯤 만들어 주고도 싶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여러 사회 문제를 관조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어도 좋겠다. 생활 문제로 영화 일을 그만둔 친구를 고용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는 것이다. 그러다 책임감을 느끼면, 잊히는 꿈에 대한 전시회를 열어보는 게 어떨까. 불치병 환자나 범죄의 피해자처럼, 아무튼 남들이 기억하기 어려운 꿈을 내가 대신 기억해 버리고 싶다. 평생 잊히지 않게 만들어 주겠다.


양조장을 하나 사서 온갖 술을 만들어 보는 건 또 어떨까. 미나리 막걸리나 바질 와인 같은 것들이 최근 시중에 나오던데, 산돌배 막걸리는 어떻고 금귤 와인은 어떨까. 포도주에 허브를 가미해 보는 건 또 어떨까. 친구네 할머니께서 동동주를 그렇게 잘 담그신다던데, 친구를 잘 꼬셔서 제품을 하나 만들어 보면 재밌지 않을까.


좋아하는 디저트를 마음껏 먹고 싶다. 먹다가 질리면 아예 디저트의 새 지평을 열어보는 것이다. 밀가루에 도토리 가루를 살짝 섞어 보거나 매실 소금빵을 만들거나 서양 딱총나무 꽃 떡을 만들면 어떤 맛이 날까. 프로그래머를 섭외해서 게임도 하나 만들어 보자. 엔딩곡은 작곡을 배운 내가 직접 쓸 것이다. 내용은 글쎄, 생각해 둔 건 있지만 지금은 비밀이다. 언젠간 써먹어야지.


종종 많은 돈으로 마약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유명인들을 보면 속이 새카맣게 탄다. 그 돈의 반만 나한테 줘도 훨씬 더 즐겁게 살 텐데. 아, 어디 누구 백억쯤 기부해 보고 싶은 사람 없나. 오십억도 좋다. 알았어. 큰맘 먹고 내가 양보한다. 이십억으로 줄여줄게. 그래도 싫어? 아니, 내가 정말 잘 써주겠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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