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도둑질

by 믈름

나는 밍숭맹숭한 사람이다. 비유하자면 비타민 반 포를 탄 5리터짜리 물. 아메리카노 세 방울을 섞은 1리터 텀블러 속의 물. 이 세상에서 고작 나 하나만큼의 존재감. 딱 그런 정도.


문학도 물론 그렇지만, 에세이 분야의 책들도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가장 날것의 작가-타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그들은 섬세하면서도 때로는 투박한 표현으로 사람의 내면에 깃든 우울과 마주 닿는다. 독자들은 공감하고 이해하며 위로받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나 역시 그 소박한 손길에 감동 받지만, 동시에 이것이 나의 길이 아님을 선명하게 자각한다. 두꺼운 벽 너머 보이지도 않고 닿을 수도 없는 남의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으레 길가에 날아가는 새 한 마리에서도 삶의 진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신호등에서 사랑을 느끼고 토마토에서 행복을 느낀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걸으면 걷는 것이다. 낙엽이 떨어지면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다. 열매가 맺혔으면 열매가 맺혔고, 구름이 예쁘면 구름이 예쁠 뿐이다. 하나 남은 잎사귀가 떨어질 때 가슴이 아리지 않고, 구름 너머에 있을 새로운 세계와 그곳에서 이어질 인연이나 사랑 뭐 그런 것들은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대단한 사람, 혹은 대단히 비참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를 향유할 수 없는 걸까. 그럴 자격이 없는 걸까.


이런 의문은 그야말로 오만이다. 오만이 맞다. 오만이라는 표현이 옳다. 그럼에도 몇 번이나 되새긴다. 나는 타인을 착취하며 살아가는데, 그렇다면 우울할 자격조차 없는 게 아닐까. 내가 우울하다고 느끼는 건 대단한 실례인 게 아닐까. 주제도 모르는 게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내가 그렇게나 경멸하는 가진 이의 매정한 자기위로가 아닌가.


나의 우울은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더욱 짙어졌다. 나와 유사한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없이 서늘했고, 동시에 그 사람들의 삶에는 색이 있을 것 같아서 내심 부러웠고, 무엇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비참해졌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가? 아니. 아니라고 확신한다.


나는 고작 이런 수준의 사람이라, 실은 그리 우울하지도 않은 주제에 남의 우울을 뺏어서 얼굴에 얼기설기 엮어놓은 것 같다. 깨지기 쉬운 날계란 껍질을 덕지덕지 꾸미는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힘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내가 텅 비어있기 때문이라고. 어딘가 나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루에도 수십번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가 부정적인 사람이 된다. 무색무취의 내가 밑도 끝도 없이 혐오스럽다가도 어떤 색으로든 물들일 수 있는 무색의 가능성 그 자체가 나의 색이라고 자위하고, 그러다가도 결국 궤변에 불과하다며 우울의 바다에 빠져든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색이 부럽고, 다른 사람의 색을 부러워하는 내가 싫다. 아무 색도 없는 게 아닐 텐데, 내 눈에는 도저히 내가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나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건 당연하다고.

그리고 이어진다. 아니, 그 정도 공감도 못 하는 데 그게 인간은 맞냐?

억지로라도 멋진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능력은 없다.

그래도 고민한다. 고민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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