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버스

by 믈름

현금 없는 클린 버스 노선입니다.


약 3년 전부터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내릴 때면 곧잘 들을 수 있는 문장이다.


유지 관리 비용을 줄이고 운전기사의 운행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현금 없는 클린 버스’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배알이 뒤틀리는 걸 보면 나는 아무래도 이 표어에 공감할 수 없는 뒤떨어진 사람인 것 같다.


세련되고 아름다우며 집값까지 높은 이 서울시의 대중교통에 딸랑딸랑 요란한 돈통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의 산물이다. 카드를 발급받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조차 탈 자격이 없고, 또 어찌나 고상하신지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 천 원짜리 지폐나 동전 따위는 줘도 안 가지는 모양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개발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른다. 두 귀에 사람 손보다도 작은 이어폰을 하나씩 끼우기만 하면 아무리 듣기 싫은 잔소리라도 모두 지워버릴 수 있으니까. 우리는 듣기 싫은 것들이 참 많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밟혀서 쓰레기 쪼가리로 변하는 소리도, 사람 목소리도, 쨍그랑 쨍쨍 시끄러운 동전 소리도 아무튼 전부! 아파서 우는 아이의 목소리를 지우고, 느리게 걸어가는 노인의 발소리를 지우고, 그렇게 하나하나 치워가다 보면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 올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말이지.


보기 싫은 것들은 치워버리면 그것이 깔끔하고 깨끗한 일일까? 그렇게만 하면 우리는 평생 더러운 것들을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걸까?


한 노인의 인터뷰를 보았다. 딸을 보기 위해 강원도 시골에서 올라온 할아버지였는데, 교통카드가 없어서 결국 버스를 타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그 노인은 ‘클린 버스’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어떤 기술에 익숙하지 못한 약자들을 더럽다고 매도해 가면서까지 우리는 깨끗해져야만 할까. 어차피 사용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없앨 필요는 없지 않았나. 행정의 히읗조차 모르는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의문을 갖는다. 내가 상상하지 못한 합리적인 사정이 있을 테지만, 언젠가 내가 보기 싫은 것이 되었을 때 이 많은 것들을 외면해 온 나는 또 얼마나 외면받을까 문득 외로워진다.


길가에 산더미처럼 쌓인 낙엽은 쓰레기나 다름없지만, 사실 나에게는 도로 위를 물들인 물감처럼 예쁘게 보인다. 밟을 때마다 나는 바삭바삭 소리도 마치 맛있는 파이를 베어 문 것 같아서 즐겁다. 성인 한 명이요, 청소년 두 명이요,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통통 떨어지는 동전 소리도 살아가는 냄새가 나서 제법 좋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고 이성적이지 못한, 기껏해야 감상적인 사람이라서 무언가를 마냥 치우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쓰레기처럼 분리된 채 저버림 당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외면하는 것이 쾌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르는 것이 행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우울 도둑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