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두서없는 글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 부진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아니라고?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다. 부럽다. 인생은 삼세판이다. 주말에 또 병원 상담을 예약했다. 이번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 그냥 평생 이렇게 살아야지 어쩔 수 있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 거다. 저번에는 내가 너무 횡설수설했다. 해야 하는 말을 못 하고, 괜찮은 척을 했던 것 같다. 즉석에서 말을 이끄는 건 원체 잘 못했으니까 차라리 기록을 해서 가져가자. 오늘의 글은 그 일환이다. 그러니까 아주 두서없을 예정이다.
잠깐이라도 멈추어 서면 굴러 떨어져서 다시는 이 레일 위로 올라서지 못할 것 같다. 단순한 생각이 아니고 어떠한 확신에 가깝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 ‘이론’을 부정할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한 번 취준생은 영원한 취준생이고, 휴식기가 길어지면 면접관의 먹이가 되고 만다. 당장 나도 고작 몇 개월 쉰 걸 왜 쉬었냐고 물어보더라. 쉬고 싶어서 쉬었겠죠 뭔. 시험을 준비하느라 쉬었다고 하긴 했다.
길가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정보다. 버스 시간표, 청년 정책, 백화점 행사…. ‘잘’ 살기 위해서는 이 모든 정보를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즉, 아무 정보도 없이 일을 시작하는 건 불성실하고 멍청한 행동이다. 보라. 버스 시간표를 살펴보지 않고 밖에 나서면 이 추위에 덜덜 떨면서 서 있어야 한다. 청년 정책을 알아보지 않으면 남들이 오십만 원을 받을 때 나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할인 행사는 말할 것도 없다. 사회의 모든 것이 나를 바보로 만든다.
재밌는 것이 있다. 하고 싶은 것도 있다. 그럼에도 해내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내게 체력이 없기 때문이다. 꾸준히 운동을 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러지 못했다. 애초에 운동을 할 수 있는 체력조차 만들어 두지 않은 것은 분명한 나의 잘못이다. 지금이라도 운동을 해야하는데, 회사가 인간적으로 너무 멀다. 오가는 데 4시간이라니? 이것 봐라. 결국 또 그럴듯한 핑계로 도망친다.
늘 이렇다. 모두 나 자신의, 나 자신만의 잘못이다. 사회의 잘못이 한 바가지 정도 들어가 있기야 하겠다만, 내가 선택했다. 전부. 이력서를 삶의 증명으로 사용하려는 시점에서 문제가 있겠으나, 이력서를 펼쳐 보면 아무것도 없지는 않다. 다만 그중에서 내 힘으로 얻어낸 건 아무것도 없다. 대학교 학비는 부모님이 내주셨다. 운이 좋아서 성적보다 좋은 학교에 갔다. 휴학 한번 없이 졸업한 데다 복수전공까지 했지만, 유사 학과였기에 따로 공부할 것도 없었고 학위도 하나다. 학점은 나쁘다. 인맥도 딱히. 애초에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공인 영어 성적이나 자격증도 그닥.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위를 땄지만, 알고 있을까. 대학원에 다닐 때 가장 중요한 건 사실 머리가 아니라 그 기간을 버텨줄 돈이다. 돈만 있고 학위를 취득하겠다는 생각만 있다면 누구나, 그야말로 개나 소나 딸 수 있는 것이 학위다. 논문 주제? 교수님의 프로젝트에서 하나 얻어쓰면 된다. 뭐 논문을 쓴 것도 대단하지 않냐고? 실험 결과가 있는데 논문을 못 쓰면 그건 머저리다.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취직은 그럭저럭 한다. 정규직은 아니어도 주제에 학위라는 게 있어서 조금만 눈을 낮추고 ‘메인’이 아닌 ‘서브’로 눈길을 돌리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기간제라면 말이다. 괜히 고학력자라는 자만만 버리면 된다. 그래. 내 자기혐오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의외인 말이지만 나는 사실 서류전형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국가 제도를 이용해 꾀를 부린 덕분인지 가장 가고 싶었던 한 곳을 제외하면 모두 합격했다. 정규직까지는 아니어도, 이렇게 경력을 일 년 이 년 쌓다 보면 꽤 괜찮을 것이다. 학비도 부모님이 내주셨겠다 취준에서 힘든 일이 있었나 하면 일하고 싶을 때는 했다. 대단한 부자는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미래를 그릴 여유가 있다. 배 곯는 일 없이 평탄하고 운 좋고 쉽게만 살아온 주제에 힘들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기만 그 자체 아닌가.
나의 모든 부족함은 맞물려 있어서 섣부르게 하나를 칭찬할 수가 없다. 그러면 결국 지금의 이 미흡한 나마저 괜찮다고 인정해야만 한다. 할까 보냐. 나는 나아지고 싶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나를 길러준 부모님이 무엇이 되며 내가 밟고 지나온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나. 물론 나에게 그럴 책임은 없다. 그런데 죄책감이 든다. 이것도 오만이라면 오만이다.
이 꼴 좀 봐라. 평소에는 생각도 안 하는 주제에 진지한 척을 하면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고 힘든 사람이 된다. 나보다 힘든 사람은 훨씬 훨씬 훨씬 많다. 세상에는 집에 샤워기가 없어서 씻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생리대가 없어서 휴지나 신발 깔창으로 대신하는 사람이 있다. 대학에 가고 싶어도 차마 못 가는 사람이 있다. 총을 맞아 죽는 사람이 있고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마 굶어 죽지 않을 것이고 총에 맞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부모님이나 나의 직업으로 무시 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만하면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왜 나는 만족을 못 할까.
쓰다 보니 가관이다. 정말 내가 정신병이 있는 게 아니라고? 아무래도 무슨 답변을 잘못 한 게 틀림없다. 정신병을 증명해 주는 항목에 표시를 잘못 한 것 같다. 검사 비용 30만 원이라는 소리에 겁을 먹어서 나도 모르게 정상인으로 표시한 게 틀림없다. 나는 맨날 이렇게 정상인 ‘척’을 하며 살아왔으니까. 어쩌면 나 스스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나아지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너는 이게 객관적으로 보이냐? 객관적이라는 핑계로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는데 이게 정상이겠냐? 내가 이래서 실험 결과로 설문 조사만 가져오는 논문을 극혐한다. 뭘 믿고 결론을 내냐?
아 진짜 그대들 어떻게 살것인가다. 내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해 S발.
아무튼 다녀와서 보자. 조만간 정신병 극복 프로젝트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