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라고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스위프트-터틀 혜성을 모체로 하며 1월에 나타나는 사분의자리 유성우와 12월에 나타나는 쌍둥이자리 유성우에 더불어 3대 유성우라고 불린다. 이 세 유성우는 매년 정기적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유난히 뚜렷한 시기를 극대기라고 한다. 올해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의 극대기는 저번 8월 12일이었다.
평생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별’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특별한 느낌이 든다. 고작 자음과 모음의 결합에 불과하지만, 입 안에서 혀가 구르는 감각이 좋다. 둥글게 마무리되는 그 느낌이 좋다. 우리는 흔히 소중한 사람을 별이라고 말하거나 능력이 우수한 재원을 별에 비유하고는 한다. 스포츠에서는 우승 횟수를 별로 표시하고, 어떤 나라 전체 또는 지도자를 별이라 부른다. 무엇이라도 내 손에 잡힐 일이 없다는 사실 만큼은 모두 알겠다.
유성우와 혜성은 다르다지만, 작년 10월쯤에도 올해의 가장 밝은 혜성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맨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말에 혹해 홀로 밤새 뒷산을 올랐다. 숲이 트인 장소를 찾아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기를 수 시간. 육안으로도 보인다는 혜성은 온데간데없고,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깜깜한 하늘과 더 깜깜하게 보이는 야밤의 활엽수들뿐이었다. 나와 같이 기대감에 부풀어 산을 올랐던 사람들의 투덜거리는 소리와 평소에는 울리는 줄도 몰랐던 벌레 소리만 주위를 채웠고, 나는 결국 모기에게 물린 종아리만 벅벅 긁으며 산에서 내려왔다.
올해야말로, 올해야말로. 그렇게 다짐하기를 벌써 몇 년인지. 어느새 유성우가 내리고 혜성이 보이는 날은 특별하기보다 그저 그런 날이 되고 말았다. 도시에서는 야밤에도 빛이 많아서 별이라곤 보이지 않고 종종 달조차도 흐리게 느껴질 지경이라, 회사를 전전하는 내내 희뿌연 하늘만이 나의 전부였다.
내가 볼 수 있는 빛이라고는 어둑한 밤을 수놓는 한강 인근의 가로등이 전부다.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리는 지하철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바깥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별이라도 이렇게 밝은 장소에는 떨어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때때로, 무게추라도 달아놓은 듯 끝없이 감기는 두 눈을 힘겹게 뜨면. 반짝반짝 빛나는 한강 변의 가로등이 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졸린 와중에, 불빛이 새카만 물에 비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유성 같아서 나는 꿈을 꾸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저 아래에는 서울을 꼭 닮은,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나고 다정하며 아름다운 도시가 있을 것만 같다. 한밤중의 한강은 금방이라도 철철 흘러넘쳐서 나와 이 지하철 칸을 덮치고, 무서워할 틈도 없이 가라앉아 모든 숨을 빼앗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저 바닥을 자유롭게 기어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 멀리 창문 너머의 강에서 들려선 안될 파도 소리가 밀려든다. 찰싹, 쏴아아. 때때로 나는 사람이 왜 물에 빠져 죽는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반딧불이가 초록색으로 울고 하늘에는 빛이 눈물처럼 번진다. 도로 위에서는 별빛이 바쁘게 도로 위를 달리고, 그리고, 그리고 물은 언제까지고 잠잠하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은 체면도 염치도 예의도 차릴 필요 없이 내 모두를 까맣게 물들여 줄 것 같다. 아무도 볼 수 없고 아무도 보이지 않도록.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의 소식을 알리는 기사 속 사진은 꼭 게임 속에서나 나올 것처럼 생겼다. 길게 뻗는 꼬리하며 어둠을 빼곡하게 수놓은 별 조각은 아마도 내가 평생 볼 수 없을 광경이리라.
창문 너머로 가로등이 궤적을 그리며 멀어진다. 점멸하는 먼지와 창틀의 그림자, 멀리서 보이는 하얀 구름과 어두운 나뭇잎 따위의 풍경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는다면 그대로 작품이 될 것 같았다. 겉이 까만 유리는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그렇다면, 어쩌면, 언젠가는, 내 인생의 한순간도 이렇게 잘라내면 예술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