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열정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식의 범주 밖에 있는 것 같다. 한자로는 열 열(熱)에 뜻 정(情). 흔히 뜨거운 마음이나 강렬한 감정으로 해석되고는 하는데, 나는 이것이 못내 어렵다. 아마 그래서겠지. 당신은 당신 인생의 주인공입니다, 라는 말이 가끔 저주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면 열정이 필요하다. 영화나 소설, 만화, 그리고 현실을 통틀어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나는 무엇이든 우울할 정도로 사랑하지 않고 행복할 정도로 싫어하지 않는다. 아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감각일까?
병원에서는 내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지만, 꼭 중추신경이 망가진 것처럼 세상 모두가 희뿌옇게 변할 때가 있다. 그때는 나와 나머지 사이에 아주 투명하고 두꺼운 유리 벽 하나가 느껴지는데, 그 탓인지 다른 사람들은 나의 존재조차 모르는 채 일상을 살아간다. 세상은 너무 넓고 세계는 나 따위를 신경 쓰지 않고 부지런히도 돌아가는 것이다.
그 사실이 지독하게 외로우면서도 어쩐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내가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만 견딜 수 있는 내가 있다.
안다. 모두가 영웅이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그냥 가깝고 알기 쉬운 희극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부류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일까?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이야기에 조연은 필수 불가결하다. 조연이 있어야 주인공이 돋보이고, 조연이 있어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내 능력이나 열정으로는 조연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에, 나는 주인공의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 고작 면접이나 회의 시간에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벌벌 떠는 나로서는 주인공의 짐이 너무 크고 무겁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건, 분명히 재밌을 것이다. 좋을 것이다. 세상이 야속하면서도 달콤해서 차마 포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얄밉고 싫고 그리고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좋겠다. 조금 질투나고 하나도 안 부럽다.
매주 월요일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깨끗하게 정제된 한 편. 내 이야기를 써보기로 다짐하며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렇게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주제로 고민하기를 일주일. 도저히 글이 완성되지 않는다.
어렴풋하게 깨닫는다. 이것은 내가 평생 껴안은 채로 나아가야 할 감정이다. 섣부르게 결론지어서는 안 되고, 섣부르게 만족해서도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그래서 거칠게나마 지금을 기록해 두기로 타협했다. 언젠가 내 나름의 결론이 완성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