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근로자에도 급이 있다

by 믈름

누군가는 우습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기간제근로자에도 엄연히 급이 존재한다. 기간제근로자의 계급은 계약기간과 업무를 비롯해 그 외 많은 조건에 따라 나뉘는데, 감사하게도 나는 개중 나은 편에 속했다. 첫째 무려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1년 단위의 계약기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둘째 야외 막노동이 아닌 실내 사무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재밌게도 회사 역시 우리를 이 보이지 않는 계급에 따라 다르게 대우했다. 이를테면 전 직원 대상 회식 자리에 내 자리는 있었지만, 오며가며 인사하는 청소 아주머니의 자리는 없다. 그러면 나는 고작 기간제근로자를 ‘직원’으로 쳐준다는 데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식사가 얹힌 듯한 불쾌감과 심지어 죄책감을 느끼고 만다.


정말이지 나는 은혜도 모르고 불만만 많은 사람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신나게 고기를 굽고 술을 따른다. 어쩌면 매일 아침, 내가 인사했던 상대는 사람이 아닌 허공이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깟 것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기야 나조차 고작 수명 1년짜리 기간제근로자인 주제에 누구를 걱정하느냐 싶다가도, 어쩌면 아니 확실하게 나 역시 ‘직원’의 범주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와닿는다. 대체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나이지만, 이런 때만큼은 유난히도 그리고 지독하게 외롭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혹은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이 현실에서 어떠한 쓴맛을 곱씹는 게 아니라, 바글바글 모인 사람들을 뚫고 영향력 있는 윗분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아 넣는 것이다. 그리 넓지 않은 이 업계의 또 다른 높은 분들에게 ‘나쁜 애는 아니었다’며 칭찬 같지도 않은 칭찬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외에 허용된 일은 없다.


차려입은 듯 차려입지 않은 듯 애매하게 정중하고 가벼운 정장에 불쾌한 고기 냄새가 뱄다. 소매 끝에서는 싸구려 소주의 알코올 냄새가, 발린 입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난다. 회식을 마칠 때쯤 쏟아지기 시작한 비도 하필이면 애매하다. 시원하게 좍좍 내리쏟으면 기분이라도 좋을 텐데, 발은 발대로 옷은 옷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젖는데 시원하지도 않다. 게다가 늘, 아무리 큰 우산을 써도 빗방울은 뚫고 들어온다.


종종 이 세상이 너무 넓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나는 평생 남극이나 북극에는 가보지 못할 테고, 우주는 물론 저기 유럽이나 미국도 너무 큰 꿈이다. 외국 어디에 다녀왔다며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들 사이에서, 해외 한 번 나가본 적 없는 나는 언제까지고 대인국에 불시착한 소인이 된다.


이상하게도 나는 튀르키예의 파묵칼레나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보다 쓰레기 매립지 옆 작은 아파트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청아한 옥색 계곡이 아닌, 깎아지르는 기암괴석이 아닌, 하늘이 비치는 사막이 아닌 아무렇게나 세워진 콘크리트 건물만이 나의 곁을 지켜줄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외롭다. 칙칙한 회색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건 나뿐인 것 같아서. 이게 정녕 나만의 쓸데없는 착각일까. 못난 패배 의식의 발현에 불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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