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언어로 바뀌는 순간
말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말에 대한 속담이나 격언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은 화살과 같아서,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혀는 마음보다 먼저 움직여, 때로는 스스로를 베는 칼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준비되기 전, 혹은 감정이 정리되기 전에도 말은 먼저 입 밖으로 나오고, 그 말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종종 후회나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아이들을 등교시키기 위해 아침 준비를 도와주러 오신 어머니께, 마음에도 없는 말이 먼저 튀어 나왔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결국 "그만좀 해 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일흔이 넘은 어머니에게 아마도 그 말들은,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아들을 걱정하는 방식이었을 텐데, 내 귀에는 자꾸 나를 탓하는 말처럼 들려왔고, 그 순간 나는 그만해 달라고 요쳥해 버린 것이다. 얼른 "사랑해요"라는 말을 덧붙이고, 도망치듯 현관문을 나섰다.
이렇게 감정이 정리되기도 전에 훅 하고 튀어나오는 이 말은, 대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천천히 그 순간을 되짚으며 나 자신을 살펴본다. 말이 나오기 전, 내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열이 오르고, 숨은 얕아지며 빨라졌다. 긴장과 초조함이 비슷한 얼굴로 마음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었다.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곧바로 언어적 행동을 선택했다. 그보다 앞서 내 감정은 이미 여러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만약 내가 그 신호를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혹은 그 신호를 어머니가 눈치챘다면,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정은 늘 행동보다 먼저 존재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그럼 '우린 왜 그 신호를 놓칠까?'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의 감정이 나타나는 시간, 마음을 알아차리는 속도보다는 우리 외부의 상황이 훨씬 빠르게 흘러간다. 내면의 감정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지만, 상황은 이미 지나가 나의 행동을 만들어 버렸다. 마음은 그 감정을 붙잡고 있지만, 어머니의 말들은 이미 끝이났고, 나는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순간에 밀려가듯 놓였다. 급해진다. 그렇게 감정이 정리되기도 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 ‘처리하는 것’에 익숙해진 삶을 살아가게 된다. 느끼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처리하는 삶은 빠르게 흘러간다. 그 속도에 맞추다 보면, 우리는 감정 줄기를 바라보고 키울 기회를 자주 놓치게 된다. 감정의 줄기는 공을 들여야 자란다. 뼈저리게 느껴보고, 잠시 머물러 보기도 하고, 견뎌보는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감정은 자기 자리를 찾게 된다.
그렇다면 감정이 비로소 말 또는 행동을 갖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어쩌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말하기 전 "잠깐 멈추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그 순간, 행동이 나오기 전 내 마음의 신호가 있던 그 순간 ‘지금 내 마음에 어떤 감정이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한 번만 물어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이 질문 하나가, 말이 튀어나오기 전의 나를 붙잡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조금 더 붙잡고 들여다본다. 그때의 몸의 신호인 '열감'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만 듣고 싶다’는 감정의 정보다, ‘지금은 감당할 여유가 없다’는 신호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초조함과 피로, 밀려오는 시간 압박이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말은 감정의 결과였고, 그 감정은 이미 몸과 마음에서 신호로 충분히 말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오늘의 나처럼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도, 잠깐 멈춰 서서 ‘지금 내 마음에 어떤 감정이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더라면,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반응이 먼저 튀어나오기 전의 나를 붙잡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 순간에 이런 질문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더 예쁜 다른 모습의 형태로 나타을지도 모른다. 감정이 말을 갖는다는 것은, 감정이 행동 뒤에 숨어 있지 않고 내가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열감과 숨 가쁨으로만 느껴지던 감정에 ‘지금은 감당할 여유가 없다’는 언어를 붙이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나를 밀어내는 힘이 아니라 내가 다룰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이 말을 갖기 시작하면, 그 감정은 이전보다 분명한 형태를 띠게 된다. 어떤 감정의 줄기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조금씩 선명해진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연습한다면, 이름을 얻은 감정들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자라나게 될까?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들과, 얼마나 더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함께할 수 있을까?
신호를 알아차리고 --> 감정을 나누고 --> 이름을 붙이면 --> 말(행동이)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