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마음이 줄기가 되는 과정
감정이 말을 갖기 시작하면, 우리는 비로소 그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한 번 알아차린 감정이 다시, 또다시 같은 상황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처음에는 우연처럼 느껴졌던 반응이 반복될수록, 감정은 점점 익숙해지고 감정 줄기는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감정은 반복 속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고, 그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는 어느 순간 늘 비슷한 감정으로 같은 자리에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이 지점부터가, 감정이 ‘줄기’를 갖기 시작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경험들이 감정을 한 방향으로 굳게 만들까? 감정은 한 번 느꼈다고 해서 곧바로 줄기가 되지 않는다. 한 번의 감정은 사건으로 남고, 기억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같은 감정이 비슷한 상황에서 반복해서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음은 점점 그 감정에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왜 또 이 감정이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때부터 감정은 우연이 아니라, 방향을 가진 흐름이 된다.
반복은 감정을 단단하게 만든다. 자주 경험하게 된 감정은 쉽게 드러나고, 자주 억눌린 감정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어떤 감정은 표현해도 괜찮았고, 어떤 감정은 참아야 했으며, 어떤 감정은 보상받았고, 어떤 감정은 무시당했다. 이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감정은 한 방향으로 자라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방향이 바로, 감정의 줄기다. 줄기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후에 어떤 감정이 자라날지를 결정한다. 태어나서부터 겪는 다양한 감정의 경험이 우리의 감정 줄기를 성장시키는 영양분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이 줄기를 ‘성격’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속에는, 오랜 시간 같은 방향으로 자라온 감정의 흔적이 담겨 있다. 쉽게 상처받는 마음, 유독 화가 먼저 치미는 순간, 혹은 늘 참고 넘기려는 태도 역시 타고난 성격이라기보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감정 경험이 만든 방향일지도 모른다. 감정의 줄기는 그렇게 우리의 말투와 태도, 관계 맺는 방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하지만 줄기는 고정된 운명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자라왔을 뿐, 앞으로도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만 자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 말을 갖기 시작하면, 우리는 비로소 그 줄기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 나는 이런 상황에서 늘 이 감정이 먼저 오는구나.”라고 알아차리는 순간, 줄기는 더 이상 무의식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보이지 않던 흐름이 의식 위로 올라오고, 그때부터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감정의 줄기 위에는, 어떤 감정의 가지들이 뻗어나가게 될까? 감정의 줄기는 우리가 겪어온 시간의 흔적이자,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온 방법이다. 그렇기에 그 줄기를 탓할 필요도, 억지로 꺾을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줄기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위에서 자라는 감정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감정의 줄기 위에서 어떤 감정들이 가지처럼 뻗어나가는지, 그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