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 괜찮은 이유
멈추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고,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나쁜 반복을 끊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런데도 어느 날, 나는 또 같은 말투로 아이를 불렀고, 같은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또 이렇게 말했지?” 배운 것들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멈췄다고 믿었는데, 다시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 그럴 때면 실망이 먼저 올라온다. ‘나는 아직도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이렇게 오래 이야기해 왔는데도 왜 또 반복하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감정의 줄기는 하루아침에 자라난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경험, 오랜 시간 몸에 배어온 반응, 수없이 되풀이되며 굳어진 방향. 그 줄기가 한 번의 깨달음으로 곧장 다른 방향으로 꺾이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너무 급한 기대를 하는 건 아닐까? 감정은 고쳐야 할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감정을 없애려 했고 누르려고 했다. 화가 나는 내가 싫었고, 서운해하는 내가 유치하게 느껴졌고, 불안해하는 나를 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감정을 다루는 대신, 억누르고, 덮고, 빠르게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감정은 제거 대상이 아니었다. 그 감정들은 한때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었다. 설명하려는 나의 태도는 오해받고 싶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마음이었고, 먼저 화를 내는 반응은 상처받기 전에 나를 보호하려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 줄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비난은 조금 줄어들고 이해가 생긴다. ‘왜 또 그랬어?’ 대신 ‘그 감정은 나를 무엇으로부터 지키려 했을까?’라고 묻게 된다. 그 질문은 감정을 약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대신, 감정을 조금 덜 거칠게 만든다.
우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감정의 방향이 바뀌는 과정은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되는 작은 멈춤으로 이루어진다. 어제는 놓쳤지만, 오늘은 한 번 더 멈췄다면 그건 이미 다른 방향이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실수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자라고 있는 중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완성된 존재는 아니다. 부모라고 해서 단단해진 줄기만 가진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씨앗이었던 시간을 지나 줄기를 만들고 가지들을 뻗으며 여전히 성장통을 겪는 중이다.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완벽해지려 하기보다 조금 더 이해하려 한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다시 실수하더라도, 그 안에서 한 번 더 멈출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실이 우리의 가장 큰 희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