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을 끊는 작은 선택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아, 내가 저 말을 또 했구나.”, “또 같은 방식으로 행동했구나.” 그 깨달음은 늘 행동 뒤에 온다. 이미 말은 나갔고, 이미 분위기는 차가웠졌고, 이미 누군가는 상처받은 뒤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늦은 깨달음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반복을 ‘의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가끔 버럭 소리를 지른 뒤,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앉아 있는다. ‘나는 저렇게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저 상황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었는데.'라는 머릿속 이야기들이 내가 어릴 적 들었던 말들과 닮아 있었다. 그 상황에서의 나는 작아졌었고, 지금 내 아이도 잠시 작아졌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나갈까, 말까. 사과를 해야 할까, 그냥 지나갈까. 그 순간이, 아마도 반복을 멈출 수 있는 첫 알아차림이었을 것이다.
반복 행동은 의식하기도 전에 일어난다. 감정은 익숙한 길을 빠르게 선택한다. 줄기는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고, 잎은 생각보다 빨리 흔들린다. 하지만 멈춤은 자동이 아니다. 멈춤에는 의식이 필요하다. 말이 튀어나오기 직전, 혹은 말이 끝난 직후라도, 단 몇 초라도 스스로를 붙잡는 일. “지금 내가 선택한 이 반응은 어디에서 온 걸까?” 이 질문이 반복을 조금 느리게 만든다.
나는 아이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아까는… 아빠가 좀 급했어.” 완벽한 사과는 아니었을 것이다. 말은 여전히 서툴렀다. 하지만 그 말은, 내가 자라온 방향과는 조금 다른 선택이었다. 아이의 표정이 완전히 풀리진 않았지만,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줄기는 이미 오랜 시간 생겨난 것이기에 단번에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우리는 방향을 조금씩 틀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우리는 낙담하듯 이런 상황이 생기고 난 후 이렇게 후회한다. ‘부모에게서 배운 건 어쩔 수 없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감정의 줄기는 운명이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그렇게 자라왔을 뿐이다. 알아차림은 줄기를 보게 하고, 멈춤은 줄기를 흔들고, 다른 선택은 줄기의 방향을 바꾼다. 처음에는 어색하다. 입에 붙지 않고, 행동이 낯설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반복을 끊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번 덜 소리 지르고, 한 번 더 설명하기 전에 멈추고, 한 번 먼저 “미안해”라고 말해 보는 일. 그 작은 선택이 다음 세대의 줄기를 조금 다르게 만들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이였고, 누군가의 부모가 되고, 또 누군가의 기억이 된다. 오늘 내가 멈춘 그 한 번이 아이에게는 “우리 집은 조금 다르다”는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감정의 줄기는 이어지지만, 그 방향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변화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내가 멈추었던 그 한순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