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엔 나비 한 마리 있다. 학창 시절 옷을 갈아입을 때 친구들이 환호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털이 있으라는 머리엔 없고, 가슴에 풍성하기 때문이다. 서른이 되어 가슴을 여는 수술을 해 몸통(흉터)이 생겼고, 나비가 완성됐다. 한 달의 입원, 열흘을 중환자실, 아버지의 눈물. 좋은 일은 아니지만 덕분에 도시를 떠나 고향에 돌아와 지금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벌새>의 은희(박지후)에게도 흉터가 있다. 중2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얼굴의 상처지만, 덕분에 가족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벌새처럼 작은 은희에게 집은 따뜻한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아버지(정인기)는 자신의 권위를 이을, 출세해 자신의 꿈을 이룰 아들 대훈(손상연)만을 싸고돈다. 방앗간 일과 집안일에 지친 어머니(이승연)는 딸들을 보듬을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대훈이 동생을 때렸을 때, 어머니는 ‘폭행’을 ‘싸움’으로 바꾸어 피해자를 없애버린다. 은희는 억울하지만 강력하게 항변하지 못한다. 언니 수희(박수연)가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는 걸 보고 나아질 게 없다는 걸 체득한 탓이다. 이렇게 하루도 나아질 게 없는 일상 속에서 ‘아픈 은희’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오빠의 따뜻한 농담(?)을 듣는다. 오랜만에 화기(和氣)가 돈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입고 산다. 상처를 입히며 산다. 1994년에는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오빠는 여동생에게, 선생님은 학생에게. 25년이 지난 지금은, 돈 빼고, 힘의 구분이 사라졌다. 모두 저마다 세상의 중심이 되어 타인을 재단하고, 상처 준다. 이렇게 싸우다 세상이 망하지 않을까,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승패가 정해지면 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잠시 멈춘다. 상대가 고개를 들면 폭력을 휘두르다가도, 아파서 꼬리를 내리면 위로한다. 자신이 위에 섰을 때 비로소 피어나는 동정의 꽃, 불행일까, 다행일까. 살아보니 안 아픈 사람,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없다. 멀쩡해 보여도 속은 썩었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저 사람도 아플 거야. 때리지 말자.’